“다 비켜요.”
“….”
“너 갑자기 왜 그래!”
“피오야, 오야, 느 그르다 다친다, 어?”
“적어도 손이라도 바꿔, 응? 너 오른손 막 쓰면 안 돼.”
“…. 진짜 질린다‥.”
“뭐….”
붕대가 칭칭 감긴 오른손, 그 손에 들린 볼품 없는 단검.
그것들을 차게 식은 눈으로 가만히 보던 피오가 다시 고개를 돌려 형들을 바라봤다.
“질린다고. 이런 것도 형들이라고 내가 의지를 했었네‥.”
“피오야, 너 말조심해. 그러다 나중에 후회-.”
“후회는 무슨. 다시 볼 일이나 있을까 모르겠네.”
“뭐?”
툭.
움찔, 발치에 떨어진 피오의 단검에 병재가 주춤, 발을 물렸다.
“피오야….”
“갈라서죠?”
“야, 표지훈.”
“형들도 지금 나 이러는 거 짜증 나잖아. 그러니까 다시 서로 낯짝 안 보게, 그냥 갈라서자고.”
“너, 말은 똑바로 해. 지금 짜증은 우리가 아니라 너 혼자 다 내고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생각 없이 오른손으로 머리카락을 잔뜩 헤집다가 표정을 찌푸리자 종민이 피오의 손을 낚아챘다.
“다친 손으로 그러지 마라, 야. 일단 들어가자, 들어가서 얘기하자.”
여전히 헤실 웃고 있는 종민은 성한 곳이 없었다.
팔이며 다리며, 머리에까지 붕대를 두르고서는 어떻게 저렇게 웃는 건지. 바보같이.
“안 가. 거기는 이제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거 같은데.”
“지훈아, 너 지금 예민해서 그래.”
“예민, 예민, 그놈의 예민!”
차마 종민의 팔을 쳐낼 수는 없어서 뒤로 물러난 피오가 붕대 감긴 손을 빤히 보다가 으득, 이를 갈았다.
“대체 몇 번 째야! 언제는 지켜주겠다며, 막내는 가만히 있으라며, 당신들 다치는 거 케어하느라 다친 게 몇 번 째야! 근데도 막내 취급, 아니, 이건 막내 취급이 아니지.”
텅 빈 피오의 눈에 병재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조용히 입술을 물어뜯었다.
“아무것도 못 하는 짐 취급이지.”
한쪽 입꼬리만 올려 웃은 피오가 몸을 돌렸다.
“계속 그런 취급 당하면서 가만히 있을 생각은, 저도 없어요.”
“니 계속 그러면 내도 가만히 안 있-!”
“형, 형. 참아요.”
“피오야.”
종민의 부름에 잠시 걸음을 멈춘 피오지만 이내 혀를 차며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
당황한 그들은, 그런 피오를 따라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무도 따라오지 않자, 피오가 다시 한번 혀를 찼다.
진짜 짜증 나, 지긋지긋해. 다시 누구랑 같이 다니나 봐라.
뒤늦게 동현이 뛰어나갔지만 이미 피오는 떠난 뒤였다.
그들의 곁에는 그저, 피오가 쓰던 낡은 단검만이 비참하게 버려져 있을 뿐이었다.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분명 처음에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그래, 처음엔 괜찮았다. 처음엔….
“병재야, 뭐 해.”
“아, 형. 더 자지, 왜 나왔어요.”
“종이 소리가 계속 들려서. 너야말로 자야지, 언제까지 정리하고 있으려고.”
“…. 빨리 원인이든 해결 방법이든 찾고 싶어서요.”
신동과 병재의 눈이 동시에 병재 옆에 잔뜩 웅크려 자는 피오를 바라봤다.
“괜찮아, 너 때문 아니야. 알지?”
신동의 말에 병재가 쓰게 웃었다.
“알죠, 어쩌다 이런 일이 생긴 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알면 좀 자. 피오도 저렇게 무사히 잘 자잖아.”
“알았어요, 형도 얼른 자요.”
“그래.”
신동이 다시 들어가고 잠시 종이를 뒤적이던 병재가 가만히 피오를 지켜봤다.
색색거리는 숨소리와 그 숨소리에 맞춰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 무사히 살아있다는 증거임에도 불구하고 괜한 불안감이 일어 코 밑에 손을 대 보곤 작은 숨을 내쉬었다.
…. 왜 나서 가지곤‥.
갑자기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식물들, 빨리 이 사태의 원인이든 해결 방법이든 찾아내야 했다.
“…. 지켜야지.”
그의 동생을 위해.
근처에 식물이 적은 이 폐건물까지 도망오면서 봤던 식물들의 특성을 간단히 정리하다 보면, 무언가 보이겠지. 어떠한 규칙이라던가, 약점이라거나, 없앨 방법이. 무언가는 보이겠지.
병재는 자지 않았다. 아니, 잘 수 없었다.
사각사각, 펄럭, 슥.
조용하고 어두운 공간 속 울려 퍼지는 병재의 노력에 피오가 살며시 눈을 떴다.
“형…? 나 언제 잠들었지‥.”
“깼어? 여기서 이러지 말고, 너도 들어가서 편하게 자.”
“형은요, 계속 정리하고 있었던 거예요?”
“아니야, 방금까지 자다가 다시 나와서 정리하는 거야.”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고하는 병재였지만, 그런 형이랑 함께 해 온 시간이 얼마인가. 한숨 쉬듯 웃은 피오가 몸을 일으켜 병재 옆에 앉았다.
“얼마나 했어요? 도울 거 없어요?”
“들어가서 자라니까.”
“형.”
“왜.”
“혀엉.”
“왜.”
콕.
“… 뭐 하니?”
볼을 콕, 찌르자 병재의 고개가 삐거덕 돌아가 피오와 눈을 맞췄다.
“이제야 좀 봐주네.”
그런 형에 웃은 피오가 책상에 엎드렸다.
“이거, 형 때문 아닌 거 알죠?”
“…. 머리, 손에 배지 마. 옷 줄까?”
하지만 이내 그 머리는 다시 돌아갔다. 조그마한 뒤통수에서 절대 마주 보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말 돌리지 말고요, 형.”
“말 돌리긴 무슨, 너 피곤해 보여. 들어가서 자.”
“저보다 형이 더 피곤해 보이거든요. 형 잘못 아니에요, 내 선택이었어요. 그러니까, 이쪽 좀 봐요.”
“….”
어떻게 봐, 몸 여기저기에 각종 크기의 밴드를 붙이고 있는 너를, 오른손에 감은 붕대에선 피가 배어 나오고 있음에도 그저 웃고 있는 너를. 내가 어떻게 보니, 형이 돼서는. 그걸 어떻게 가만히 보고만 있니.
“내가 나빴어요, 형이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도 제가 그런 선택을 한 거예요. 내 잘못이에요.”
“…. 너 오른손 그거, 다시 못 쓸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아요, 형 살렸잖아요.
목 끝까지 차오른 그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그런 말을 한다고 그건 그렇지, 하며 좋아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오히려 화내고 오히려 자책하고, 오히려 스스로 몰아붙일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대신 더욱 밝게 웃어 보이는 것을 선택했다.
“제 회복력을 얕보지 마세요. 보란 듯이 나을 테니까.”
“…. 넌 걱정도 안 되냐?”
“네, 형들이 언제나 제 곁에 있을 건데 제가 뭘 걱정해요? 그런 거 걱정할 시간에 형 쓰러질까 걱정하는 게 더 효율적이겠다.”
“그게 무슨.”
결국 웃음을 터트리는 병재에 피오가 한결 편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그렇게 우울하게 앉아있지 말고. 자러 가요. 좀 더 맑은 머리로 생각해야 더 잘 굴러가지, 안 그래요?”
“‥ 우리 피오‥ 언제 이렇게 컸대.”
“원래 형보다 한참 컸어요.”
“다리도 못 쓰게 해 줄까?”
“하하! 얼른 가서 자요, 우리 작은 병재 형.”
“이게 진짜….”
어떻게 안 무섭겠는가.
지금 상황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식물 아포칼립스’. 그래, 종말. 종말이다. 식물로 인해 이 세상에 종말이 찾아왔다. 앞으로 몸으로 겪게 될 지구의 변화와 식물의 변화. 두렵다. 무섭다. 나는 강하지 않다, 나는 겁쟁이다. 도망가고 싶다. 하지만.
“저희는 끝까지 함께일 거잖아요, 그죠?”
“…. 그렇지. 이제 자, 지훈아.”
“응, 좋은 꿈 꿔요, 형.”
“너도.”
나를 강하게 만들어 줄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까, 겁이 나 주저앉아있으면 일으켜줄 사람들이 있으니까.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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