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 일단 안에 단디 있으라, 알긋나.”
“알겠어요, 조심해요.”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 대대적인 깜짝 카메라, 뭐 그런 거겠지. 오늘은….”
1일이잖아.
흘러나오는 뉴스를 최대한 무시하며 호동과 동현이 밑으로 내려갔다.
남은 이들은 괜찮을 거라 자위하면서도 형들이 연락하면 언제든 나갈 수 있도록 이미 챙긴 짐을 계속 확인하며 가방을 더욱 빵빵하게 채웠다.
“괜찮아? 안 무거워?”
“제 가방엔 책밖에 없는걸요, 뭘.”
“그냥 책이 아니라 두꺼운 책이잖아, 게다가 여러 권. 무거우면 말해, 알았지?”
“알았어요.”
“그건 그렇고 우리 집에 식물도감에, 사전에, 이렇게 많은 줄 몰랐네.”
경직된 분위기를 풀고자 신동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병재가 볼을 긁적였다.
“저렇게 많이 사 뒀는데 눈치 못 챈 형들도 웃기거든요.”
“하하, 그래, 그래. 살인 감옥에서 핸들 못 발견해서 속상했던 병재 마음 못 알아줘서 미안해.”
“아, 혀엉!”
“푸핫, 미안, 미안. 근데 진짜 좀 웃기잖아. 그거 하나 발견 못 했다고 이렇게 많이.”
“꼭 그거 때문만은 아니거든요? 그냥 제가 식물에 대해 좀 배우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해두자.”
“아, 진짜.”
신동의 장난 덕에 좀 풀린 분위기 속에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삐리리리리-!
그 분위기가 계속됐으면 좋았으련만.
언제 연락이 올지 몰라 소리를 켜두었던 휴대전화가 날카롭게 울렸다.
“….”
“받을게.”
“네.”
“네, 형.”
“쫑미나! 빨리 내려와라!”
“형 애들이랑 물건 다 챙겨서 빨리 오세요!”
아.
1일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빨리 갈게요.”
“엘베 안 된다, 계단으로 빨리 와라이! 창틀에 화분들 몇 개 있던데 거 조심하고!”
“알았어요, 형들도 조심히 기다리고 있어요!”
“어어-, 알긋다!”
“어!”
전화가 끊기고 한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4월 1일의 희망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굳어 있을 시간은 없다. 가방을 두 개씩 짊어진 이들이 빠르게 집을 훑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호동과 동현이 내려가며 이미 한 차례 휩쓸고 간 것인지 창틀에 놓여있다던 화분들은 전부 바닥으로 곤두박질쳐진 채 깨져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진짜!”
“형, 빨리빨리!”
하지만 화분은, 그저 깨진 평범한 화분이 아니었다.
화분이 꿈틀꿈틀 움직였고, 온몸에 소름이 돋은 이들이 계단을 몇 칸씩 뛰어 내려갔다.
“허억, 힘들, 흐어.”
“형, 빨리!”
“어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다 못해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참고 1층까지 내려갔을 때 그들 앞에 펼쳐진 풍경은 비참한 광경도, 형들의 장난도, 밝은 바깥도 아니었다.
“저거 뭐야!”
끝없는.
“미친, 저거 식물 줄기 아니에요?”
“어떡해, 이거 어떻게 나가!”
어둠이었다.
“전등은 왜 또 안 되는 거야, 이거!”
“형, 폰, 플래시 좀 켜 봐요.”
“아, 어!”
주위를 둘러보기 위해 손전등을 켜는 사이 다른 이들도 건물을 벗어나기 위해 모였고, 그곳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형! 함부로 만지지 마요!”
이미 유리문은 깨져 있었고 문이 있어야 할 곳을 두꺼운 식물이 대체하고 있었다. 정체 모를 그것에 기어코 손을 갖다 댄 종민이 어색하게 웃었다.
“어? 어어, 근데 이거 식물 줄기 아니고 나뭇가지 같은데.”
“네‥?”
“엄청 거칠고… 딱딱해.”
“미친.”
누군가 욕을 내뱉었다. 누구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우리 넷 중에는 없었던 것 같다. 옆에서 종민이 형의 말을 들은, 다른 이웃 주민인 듯했다. 그의 욕을 시작으로, 다들 제각각 욕을 내뱉었다.
“이게 뭐야, 꺼내 줘!”
“X발, 경찰은 뭐 하고 있는 거야!”
“다 비켜! 이런 거, 뜯으면 그만이잖아!”
“살고 싶어, 이렇게 영문도 모르고 죽고 싶지 않아!”
“X나 딱딱하네, X발 진짜! 애초에 나무가 왜 건물 문을 막을 만큼 자랐냐고, X발!”
“다들 진정-!”
“꺼내 줘! 꺼내 줘, 제발!”
살고 싶었던 사람들은 결국 서로를 물어뜯었다. 어차피 뜯기지 않을 나무를 눈앞에 두고, 자기네들끼리 서로를 뜯었다. 살고 싶은 사람들의 순간적인 힘은 강했고, 넷은 순식간에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목격했다. 그 비참한 광경을, 뒤에서,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전부.
자기네들끼리 싸운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그것을 분명 알고 있을 텐데. 심기가 예민한 사람들은 다른 이가 자신과 조금만 부딪혀도 욕을 하고 주먹을 날렸다. 자기를 밀어내고 나무를 확인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이 사람 뭔가 이상하다고, 이 사태의 원흉 아니냐며 몰아갔고, 그 말도 안 되는 몰이에도 사람들은 쉽게 휩쓸렸다. 위기 상황의 유대 따위는, 없었다. 그저 더럽고 또 추악한, 괴물들만이 남아있었다.
분명 지금 인간을 위협하는 것은, 정체불명의 식물들이었는데. 인간을 죽이는 것은, 인간이었다. 참 우습게도. 인간이란, 그런 존재였다. 변하지 않고.
삐리리리리-!
“형, 전화!”
“….”
“형, 형, 전화!”
“어, 아, 어!”
그런 이들을 가만히 보던 종민이 한 박자 늦게 전화를 받았다.
“종‥ 여… 도끼… 조심‥ 뒤‥!”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호동의 목소리가 이리저리 끊기며 흔들렸다.
“뭐라고요?”
“형, 가지에 막혀서 지금 전파가 잘 안 터지는 거 같아요!”
“천천히, 천천히 말해주세요!”
“도끼!”
“네!”
“가지! 도끼! 조심! 뒤로! 물러나!”
호동이 한 단어, 한 단어 힘주어 말하자 병재가 사람들 너머의 가지를 쳐다봤다.
“도끼로 가지 자를 테니까 뒤로 물러나 있으라는 거 같은데요?”
“근데 지금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뒤로 물러나 있게 할 수 있나?”
“… 해 봐야죠.”
계단 위로 한 두 칸 올라간 피오가 숨을 깊게 들이쉬고서는 크게 외쳤다.
“여러분!”
“뭐야.”
“저 꼬맹이는 또 뭐야.”
“잠시만 조용히 해주세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계단을 좀 더 오른 피오가 더 크게 소리쳤다. 안 그래도 낮은 목소리가 갈리는 소리가 났지만,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양, 최선을 다해 외쳤다.
“지금 밖에서! 도끼로 가지를 칠 거래요!”
“뭐?”
“진짜?”
“살았다, 살았어!”
“드디어!”
“너무 늦었잖아!”
“위험하니까! 다들 뒤로 조금씩만 물러나 주세요!”
아까는 서로의 얘기를 듣지도 않고 헐뜯기만 하던 이들이, 생존의 가능성이 조금 피어나자 다시 평소의 사람으로 돌아왔다. 일제히 뒤로 물러나자 신동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걸 본 종민이 휴대전화에 대고 말했다.
“형, 됐어요! 이제 해주세요!”
쾅! 쾅! 쾅!
도끼를 들고 있는 것이 호동과 동현만은 아닌 건지, 가지를 내려치는 소리 여럿이 동시에 울렸다.
확실한 구조의 소리에, 서로를 헐뜯던 이들이 이제는 서로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된다!”
사람이 빠져나갈 틈이 생기자, 사람들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기다려요!”
그 모습에 피오가 다시 크게 소리쳤다.
“아직은 구멍이 너무 작아요!”
“하지만 구멍이 났잖아!”
“타이밍을 놓쳤다가 못 나가면 어떡해!”
“질서 없이 서로 먼저 나가겠다고 엉켜있다가! 다 못 나갈 수도 있어요!”
“맞아, 서로 먼저 나가겠다고 하다가 다 못 나가면 어떡해.”
“하긴, 그 말도 맞긴 하지.”
“구멍이 조금 더 커지면! 앞사람부터 천천히! 나가기로 해요!”
“그래, 그래. 저 사람이 아니었으면 밖에서 구조 온 것도 몰랐을 텐데, 말 듣자.”
다행히 어둠뿐이던 건물에 뚫린 구멍으로 빛이 새어 들어오자 그 빛이 사람들의 불안과 혼란을 태우기라도 한 듯,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얌전히 구멍이 더 커지기를 기다렸다.
“괜찮습니까?”
“한 명씩 천천히 나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가지 끝이 날카롭습니다! 급하게 나오려 하지 마시고, 천천히 나오십쇼!”
“살았어, 살았다고!”
“아,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나가는 것을 돕고 넷이 마지막으로 건물을 빠져나왔다.
“야들아!”
“형!”
“느그 괘않나!”
“괜찮아요?!”
“저흰 괜찮아요, 형들은요?”
“우리도 괘않타.”
밖으로 나와 본 풍경은 생각보다 비참했다.
방금 자신들이 있던 건물은 가지로 인해 입구가 막히는 것으로 끝났지만, 무너진 건물들도 있었다. 그 건물의 잔해에 깔린 사람들. 식물에게 붙잡힌 사람들. 급하게 도망치다 상처 입은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온 경찰들과 구급차로 길은 엉망이었다.
“이게 진짜 무슨 일이야, 다….”
“그래도 끝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요?”
“엉, 원래 식물들이 난리였는데 지금 잠잠해지기도 했고. 아까 우리 둘이 내려왔을 때는 구조 활동은 꿈도 못 꿀 정도였어.”
“와, 내 진짜 식물이 그리 무서워질 줄 몰랐다.”
그래도 상황이 끝난 거 같다는 둘의 말에 신동이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대로 쪼그려 앉았다.
“와‥ 진짜 무서웠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
“그건 뭐 경찰 쪽이 알아서 조사하겠죠. 사상자가 이렇게 많은데, 그냥 넘기진 않을 거예요.”
들것을 들고 뛰어다니는 구급대원들을 보며 병재도 힘없이 말했다. 알게 모르게 긴장하고 있던 것인지, 온몸이 뻐근했다.
“저기!”
“네?”
“아까 저 건물에서 나오신 분들 맞죠?”
“아, 네. 맞습니다. 무슨 문제 있나요?”
갑자기 다가온 경찰에 병재가 살짝 수그렸던 몸을 일으켜 경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혹시 안에 남은 사람은 없었습니까?”
“거기까지는 저희가 확인을….”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래도 무사히 빠져나오셔서 다행입니다. 저기 아까 가지 같이 뚫으신 분들 맞죠.”
경찰이 이번에는 호동과 동현을 보며 살짝 웃고는 물었다.
“아, 예. 맞습니다.”
“아까는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입니다, 저희도 동생들이 안에 있어가, 어차피 뚫어야 했습니더.”
“동생분들이 무사하셔서 다행이네요. 혹시 식물이 이상 현상의 발하는 초기 증상은 보셨습니까?”
“아니예, 저희도 건물이 흔들리기에 내려와 봤슴더.”
“흐음,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저기서 피해자분들 신분을 조회하고 있습니다.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찰이 다른 이들에게도 말을 걸러 가고 여섯은 천천히 신분 조회를 하고 있다는 현수막으로 걸어갔다.
“사망자도‥ 많겠죠?”
“적진 않겠지. 그걸 위해 신분 조회도 하는 걸 테고.”
그렇게 비참하진 않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건물이 몇 개나 무너져 있고 피 웅덩이가 곳곳에 고여 있는데 그것들을 외면하고 괜찮을 거라 할 수는 없었다. 다른 말을 내뱉을 수도 없었다. 그저 착잡한 표정으로 묵묵히 신분 조회를 하러 갈 뿐이었다.
“네, 확인되셨습니다-.”
“형들, 저희 밖에서 기다릴게요.”
“어야.”
피오와 병재가 먼저 신분 조회를 끝내고 현수막 밖으로 나왔다.
“잠깐 사이에 진짜 많은 일이 있었네요‥.”
“그래도 금방 끝나서 다행이지. 으….”
“형? 왜 그래요.”
“응? 아니, 아니. 저기 꽃집이 있길래. 기분이 좀 이상해서.”
병재가 가리킨 곳에는 용케도 무너지지 않고 버틴 꽃집이 있었다. 저 꽃은 조화인지, 아니면 이 불행을 빗겨나간 것인지. 밖에 가지런히 진열된 화분도 멀쩡했다.
“그래도 사장님은 살았겠네요.”
“하하, 그러게.”
괜히 기분이 이상하다며 눈에 꽃집이 보이지 않게 등을 돌린 병재가 나오지 않는 형들을 기다렸다.
“피오야, 가방 좀 내려놔. 무겁겠다.”
“아, 그렇네. 가방 7개나 쌌는데, 크큭. 다 쓸모없어졌네요.”
“쓸 일 없어서 다행이지, 뭐.”
“근데 저희, 집 들어갈 수 있을까요? 아직 나뭇가지가 완전히 정리가 안 됐는, 형!”
“응?”
꽃집을 완전히 등지고 있던 병재와 달리 비스듬히 서 있어 꽃집이 시야에 들어와 있던 피오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 무엇도, 끝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급하게 병재를 밀치며 피오가 무언가를 오른손으로 강하게 움켜쥐었다.
“윽, 피오-!”
“아윽‥!”
꽃집의 밖에 진열돼 있던 선인장이, 몸을 날렸다. 마치 대포를 발사하듯, 자신의 몸의 일부를 떼어 내 날렸다. 병재의 뒤를 노리며.
“야, 너, 무슨, 놔!”
“형, 괜찮아요?”
“나를 걱정할 때야? 놔! 놓으라고!”
“아니, 그게‥.”
놓을 수가 없다….
마치 양날의 검을 맨손으로 움켜쥔 것처럼 선인장이 점점 살을 파고 들어가는데,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형, 일단 꽃집에서 안 보이는 대로 가요.”
“아니, 놓기부터!”
“형!”
“….”
얼른 꽃집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한 피오와 병재가 손을 살폈다.
“됐지? 이제 빨리 좀 놔.”
“놓으면 더 다칠 것 같아요.”
“뭐‥?”
“선인장 가시가, 박혔어요.”
선인장 가시가 이상하게 박힌 것인지 놓으려 해도 가시에 막히는 느낌이 났다.
“그러게 너는 왜!”
“어떡해요, 그럼. 그대로 형 등에 박히게 둘 순 없잖아요.”
“그걸 말이라고!”
“아, 아야. 상처 울려요. 소리치지 마요옹.”
애교로 병재를 진정시킨 피오가 천천히 손을 펼쳤다.
“형, 저 좀 아파도 상관없으니까 그냥 빼줄래요?”
“….”
“저 진짜 괜찮아요. 나보다 형이 더 아파 보여.”
병재가 미간을 찌푸린 채 입술을 짓씹으며 피오의 손을 쉽사리 건들지 못하자 피오가 병재의 손을 잡아 살포시 자신의 손 위로 올렸다.
“저 진짜 괜찮아요. 이대로 박혀 있는 게 더 위험해요. 점점 더 깊숙하게 들어가는 거 같아서. 그냥 빼주세요.”
“…. 최대한 빨리 뺄게. 도저히 아파서 안 될 것 같으면 말해, 알았지?”
“알았어요. 바로 말할게요.”
입술을 세게 악문 병재가 눈을 질끈 감고 피오의 손에서 선인장을 빼냈다.
“윽!”
“너 괜찮아?!”
“윽‥, 흡‥, 하…. 끄윽‥ 크하… 하아… 하아…. 괜찮아요…. 고맙-, 윽!”
피오도, 병재도. 선인장을 빼는 데 집중하느라 보지 못했다.
“피오야!”
“아.”
망했다.
땅을 기며 다가오고 있던 덩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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