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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어서 와 2022. 3. 5. 16:27

◇ 수호미리 엔페스입니다.

◇ '수호가 백사회를 배신하지 않았다면' 이라는 상황을 가정하고 쓴 글입니다.


"안녕? 난 은미리라고 해."

백사회의 명령으로 오게 된 하늘의 쉼터.
이 곳에 새로운 여자애가 한 명 왔다.

"...나는 천수호야."
"여기는 어떤 곳이야?"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지낼 곳을 주고 신앙을 가르쳐. 나이가 되면 자립할 수 있게 일도 해."
"아.. 그래? 무슨 일인데?"
"마네킹 공장."
"으음.. 나는 못 하겠네. 도움은 커녕 방해만 될테니까."

씁쓸하게 웃는 은미리를 바라보다 물었다.

"너도 갈 곳이 없어서 이 곳으로 온 거야?"
"아.. 응. 가족들이 전부 흙으로 돌아갔어. 나도 눈을 잃었지. 그런 마당에 친인척도 없어서.... 내가 이 곳에 있는다고 도움이 될까? 난 아직 점자도 서툴고.. 일도 못 할텐데."

흐음..

은미리의 말에 왜 신하늘이 도움도 안 되는 애를 데려왔는지 깨달았다.

대부분 진짜 갈 곳 없는 애들이 아닌지라 의심을 좀 받더니.. 진짜로 도움이 필요한 애를 데리고 왔네. 의심을 덜기엔 좋은 수단이지만.. 말마따나 방해만 될텐데 말이지.

"점자야, 뭐. 배우면 되잖아. 도와줄게. 자립심을 키우기 위해 일을 하는거지, 돈을 벌어 이 곳에 도움이 되기 위해 일하는게 아니야. 걱정할 거 없어."

속마음을 감추고서 말하자 은미리는 그제야 좀 웃어보였다.

"그래? 고마워! 이 곳 아이들은.. 전부 어딘가 멍하더라고. 마치.. 최면에 걸린 거 같달까? 너랑은 대화가 통해서 다행이야."
"...최면?"
"응? 응.. 내가 착각한 거겠지만 다들 멍해서 대화가 안 통하더라고. 다들 피곤해서 그런거겠지?"
"아마 그런걸거야. 최면이란게 존재할리가 없잖아?"
"역시 그렇지?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 수호야!"
"나도."

그땐 정말로 연기에 불가했다.
아니.. 연기라기보단 순진한 애를 가지고 하는 장난에 더 가까웠다.

"PD님께 전화해서 의뢰를 할 거야."

의지가 있는 아이기에, 혹 의심을 사 신고를 하거나 이상한 말을 하며 이것저것 눈치채는 것은 곤란해서. 어제 들었던 그 순간이 닥칠 것이 분명하기에. 단순히 그런 이유 하나 만으로.... 아니... 아닌가..? 정말 그런 이유 뿐이였던가?

"수호야!"
"응?"
"무슨 생각을 하기에 내 말에도 집중을 못 해?"
"아.. 미안. 잠시 멍때리고 있었어."
"어디 아픈 건 아니고?"
"전혀. 그래서 전화건은 어떻게 됐다고?"
"전화 도중에 큰 소리가 나서 할 말을 전부 전하지는 못 했어. 조만간 다시 시도하려고."
"너무 위험하지 않아?"
"에이, 네가 도와주는데 위험하긴 무슨."

그래서 위험하다는 거야, 멍청아. 난  뱀이 재미로 키우는 개란 말이야.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차마 내뱉지는 못 했다.난 은미리한테 이런 감정을 느끼면 안 될 뿐더러 그럴 자격도 없었다.

스스로를 타이르다 보니 서서히 평정심이 돌아왔고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었다.

이 일이 들키면 나는 무사하지 못 하겠지.. 뭐. 상관없나. 어차피 백사회 녀석들은 나도 신하늘도 처리할 생각이니까. 그냥 이 곳의 아이들과 함꼐 죽은 척 스스로를 죽이고 숨어살면 되는 문제니까.

그러니까 은미리, 아쉽지만 이 마음은 여기까지야.
부디 여기까지만 하길 바라. 네가 죽거나 다치는 건 딱히 보고싶지 않거든.

하지만 나의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 눈도 안 보이는 녀석을 혼자 원장실에 들여보내는 게 아니였는데.... 적어도 누가 있는지는 확인하고 전화를 했어야지.. 진짜 멍청이 아니야?

하지만 축 쳐져선 우울해하는 녀석에게 진짜로 그런 말을 할 순 없었다.

"괜찮아. 좀 배고프긴 하겠지만, 적어도 맞진 않았잖아. 버팉 수 있지?"
"응.... 미안해.. 정말로..."
"됐어. 그리고... 미안해해야 할 건 나야."
"응..?"
"미안... 속여서."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수호야!"

당황해서 나를 부르는 은미리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내가 아무 대꾸도 하지않자 잠 든거라고 생각했는지 곧 입을 다물더니 좁은 우리에 몸을 구겨 최대한 편한 자세를 찾고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아야 했다.

하..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니. 어쩌면 첫만남부터 알았을지도.

은미리한테 그 어떤 진실도 알려주지 않은 채 우리의 암묵적인 사망일이 다가왔다.

"은미리."
"응?"
"...원장님이 마시라는 거 마시지마. 마시는 척만 해."
"무슨.."

이 정도는... 알려줘도 되겠지.

내가 그런 말을 하는 목적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은미리는 정말로 내 말대로 눈 앞에 있는 액체를 마시는 척만 하였다.

곧이어 그 액체를 마신 아이들과 신하늘이 신음과 비명을 내지르다 한 명, 한 명 쓰러져갔다.

"이, 이게 뭐야?! 왜 애들이 아파해? 수호야? 수호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야? 왜 애들이 괴로워하다가 조용해진건데? 수호야.. 나 무서워..."

내 옷자락을 잡아쥐는 은미리의 손에서 벗어난 뒤 아이들과 신하늘을 확인했다.

"다들 죽었네."
"..뭐...?!"
"신하늘이 마시라면서 우리한테 준 거. 그거 독이야."
"무슨... 그럼 원장님은? 독인걸 알고 준 거면 원장님은 살아있었야지!"
"해독제라고 믿고서 독을 또 먹었지. 독을 두개나 먹었으니 살긴 글렀을 걸."

탕! 구르르르-

많이 충격을 먹었는지 은 미리가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를 떨어트리면서 큰 소리가 났다.

"너는.. 너는 그걸 왜 알고 있는데...?"
"그야.. 뻔하지 않아? 신하늘이 왜 갑자기 독약을 가져와서 동반자살을 하겠어. 신하늘도 윗사람들이 시키는대로 움직인 것 뿐이야. 나는 그 곳에서 스파이로 이 곳에 잠입한거고."
"....그런.. 애였던거야...?"
"...안타깝지만, 그래. 네가 보고있던 너는 내가 만들어 낸 나에 불가해. 이쪽이 진짜 나야."
"거짓말."

억눌린 듯한 물음에 기껏 대답해줬으나 은미리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믿기 싫으면 믿지마. 그건 너 자유니까."
"....널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갑자기 나온 뜬금없는 말에 잠시 굳었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거 참 재밌는 말이네. 나도. 나도 널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

우리는 더 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은연 중에 알고 있었다.

같은 음절, 같은 문장, 같은 말이였지만 그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만은 다르다는 것을.

"...왜 나는 처리하지 않은 거야? 나까지 죽어줘야 네가 완전범죄를 계획할 수 있었을텐데."
"....."
"말 해! 왜 날 죽이지 않았어! 모두가 죽는동안 막지도 못하고 보기만 하고서 허탈해하는 내가 보고 싶었어?"
"어떻게! 어떻게 그러는데, 어떻게.. 주제에 널 사랑하게 됐는데... 그런 네가 죽는 걸 내가 어떻게 보냐고...."

그 말을 하는 동안 내 몸은 점점 흘러내려서 결국 무릎 꿇었다.

그래.. 어떻게 그래...

은미리가 허탈하게 웃기 시작했다.

"하... 하하.. 하하하..... 하.. 그래서? 행복하니? 내가 죽지않아서 행복해? 죽지 않고 너 눈 앞에서 이렇게 슬퍼하는 걸 보니까 행복하냐고!!"

그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전혀 행복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였기에... 울고싶었지만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차라리 우리 모두 살려주지 그랬어! 네가 날 사랑한다면, 나한테 이런 사실을 털어놓고 함께 해결방안을 모색해봤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랬으면 이렇게 많은 생명이 허무하게 떠날 일은 없었을 거 아냐...."

은미리의 말에 나는 얼굴을 손에 묻었다.

"그럴 수 없었어.. 나도... 나도 마음같아선 내 목줄을 네게 맡기고 싶었어. 하지만.. 내 목줄은 이미 다른 사람이 쥐고 있는걸... 그 사람의 변심이면 죽어야하는 처지인게 나인걸....

그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할 수 없었어... 난... 내겐 그럴 자격이 없었어.. 슬플때 울고 기쁠때 웃는것조차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한 삶이였어.... 처음 느낀 사랑이란 감정을.. 온전히 즐길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나야....

내 말에 그 어떤 대답도 해주지 않은 미리가 주저앉아서 손을 더듬거리더니 독이 담긴 잔을 들어올렸다.

마시지 않고 마신 척만 했기에 그 잔에는 여전히 독이 찰랑거리며 담겨있었다.

"무슨.!"
"그래. 네게도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하지만, 난 널 이해하지 못하겠어. 네가 고통스러웠던 그 시간동안 난 가족들 틈에 있었기 때문이겠지. 미안. 난 내 목줄이 다른 사람의 손에 있는 경험따윈 해 보지 못해서."

그 말을 마지막으로 미리는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털석-

미리의 몸이 흘러내렸다.

"아.. 아아...."

온 몸이 덜덜 떨려왔다.

미리가.. 미리가 죽었다. 심지어... 본인 손으로 독을 삼켜서.... 본인이 선택한 죽음이였다.

그래. 자기의 목줄이 다른 사람의 손에 있는 경험 따윈 못 해봤다던 미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손에 목줄을 쥐고있었으며, 그 손으로 죽음까지 선택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폰을 켰다.

혹시 몰라 저장해두었던 대박사건 24시의 용승남PD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동안 하늘의 쉼터가 무슨 짓을 해왔는지, 그걸 누가 시켰는지에 대해 전부 털어놓고, 백사회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확실한 증거도 전부 넘겼다.

그리고 나 또한 독이 든 잔을 들어올렸다.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그 독은, 빛에 반사 돼 쓸데없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도.. 아프게 죽진 않겠네...."

반댓쪽 손으로 미리의 손을 꼭 쥐어잡고서 독을 전부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인을 물어뜯은 개의 마지막 순간이였다.



미리의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사랑하게 될 줄 알았는데, 널 사랑하지 않아.

수호의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사랑하게 될 줄 알았고, 역시나 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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