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에 나오는 인물들은 실제 인물과는 연관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2P 설정입니다.
*뇌 빼고 써서 엥? 하게 되는 무근본 전개가 이어지니까 감안하고 보세요. 사랑함다.
"야. 야. 아, 진짜. 야! 일어나라고."
"아, 시X 진짜.."
자기를 깨우는 소리에, 그게 누군지도 보지 않고, 병재는 욕부터 날렸다.
"개X끼야, 내가 자는 건 깨우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귓구녕에 살쪘냐? 아니며 죽을 때가 다 돼서 대가리가 안 굴러가?"
"뒤지든 말든 신경 안 쓰려던 거 챙겨줬더니 왜 지X이야."
그에 피오도 참지 않고, 웃는 얼굴에 '오늘 날씨가 맑네.'라고 말하는 듯한 조곤조곤한 말투로 욕을 했다.
병재가 또 따지려 할 때, 피오는 폰을 들이밀어 무언가를 보여줬다.
생중계되고 있는 뉴스에서 보이는 건 사람을 뜯어먹는... 사람.... 이였다.
"이게.. 무슨..."
"살아있는 시체."
피오는 간단명료하게 설명했지만, 그 상황은 전혀 간단하지도, 간단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말이 안 되잖아. PDS바이러스는 이 연구랑 같이 아예 없앴어. 다시 창궐한다고 해도 전 국민이 백신을 맞았는데. 뭐? 좀비?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왜 저한테 그러시는 건지. 믿고 싶지 않은 건 알겠는데 믿으셔야 죠. 지금, 저희 아파트 밑에서 영화를 찍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죠."
피오의 덤덤한 말에 작게 한숨을 내쉬고서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저야 모르죠. 아침부터 나갔는데. 죽었든 살았든. 제 알 바는 아니니까. 통신망이 고장 난 건지 연락도 안 되더라고요."
표정만 보면 정말 해사하지만, 그 눈은 죽어있고, 그 입에서 나오는 내용은 전혀 밝지 않았다.
집 안에서 인기척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저와 피오를 제외하고서는 전부 밖에 나간 게 확실한 상황에서도 피오는 걱정은커녕 웃고 있었기에 본인이 이상하고 비정상인 건가 하는 생각에 휩싸였다.
"넌 걱정도 안 돼?"
"와.. 그 단어가 제일 안 어울리는 사람이 본인이라는 건 알고 있죠, 형?"
"무슨.."
"형 말이에요. '그날' 이후로 이상해. 알아요? 알량한 죄책감.. 인가요?"
"..."
분위기가 이상해지고 있을 때 마침 도어록 누르는 소리가 나더니 종민과 신동이 뛰어들어왔다.
"아. 살았네. 아깝다."
허리를 숙여 병재와 눈을 맞추고 있던 피오가 허리를 세우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둘을 보곤 덤덤하게 말했다.
종민은 그런 피오를 흘겨보며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지만,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고 신동은 그저 싱글벙글 웃고 있을 뿐이었다. 둘 다 속으로 무슨 생각 중인 건지 유추조차 되지 않았다.
걸쇠까지 채운 종민이 거실로 가 소파에 주저앉았다.
"용케도 살아 돌아왔네요."
"호동이 형이랑, 동현이는."
"저야 모르죠. 죽었든, 살았든."
"우리 여기서 오래 못 버텨."
피곤해서 눈을 감아버린 종민 대신, 신동이 싱글벙글한 채로 말했다.
"형은 이럴 때까지 뭐가 그렇게 좋아요."
제대로 자지도 못 한 병재가 예민하게 쏘아붙였지만, 그럼에도 신동은 싱글벙글하게 웃어 보였다.
"여기 계속 있다간 굶어 죽어."
"나가면 좀비한테 물례 뒤지겠죠. 시X.. 하루아침에 이게 무슨 일이냐.. 좀비 소굴에 들어간 적은 있어도 이렇게 제대로 풀려버린 건 처음인 거 같은데...."
호동, 동현과는 연락도 안 되고, 이대로 있다간 식량이 떨어져서 굶어 죽을 걸 알기에 결국 그들의 선택은 좀비들 틈으로 숨어드는 거였다.
밤까지 기다리다가 좀비들의 움직임이 둔해진 것을 확인하고서 좀비와 시체들 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식량이라곤 생라면 몇 봉지와, 참치 몇 캔이 끝이었다.
어두운 밤.
그들이 의지할 건, 어두운 곳에서도 이것저것 잘 보는 종민뿐이었다.
최대한 숨을 죽이며 어디까지 갔을까.
좀비들이 모두 일정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좀비들이 가는 그 방향 끝에는 무언가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곳으로 살금살금 다가가자 그 소리는 더욱 커져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자, 그 둔탁한 소리의 주인은 동현이 쇠파이프로 좀비를 내려치는 소리였다.
동현은 바닥에 던지듯이 내려둔 작은 손전등의 불빛에 의지한 채, 쇠파이프 하나만으로 무수히 많은 좀비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런 동현의 뒤에는 호동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여기서 저기가 보이진 않지만, 아마 이번에도 울었겠지.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들에게로 걸어가는 도중, 피오가 바닥에 버려진 캔을 밟아 우지끈 소리가 났으나 동현에게 정신이 팔린 좀비들은 그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그들이 동현에게 도착해 어깨에 손을 올리자, 곧바로 동현의 주먹이 날아왔다.
허나, 그 주먹은 호동이 막아줬기에,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어깨에 손을 올린 이들이 자기와 동거하던 이들이라는 것을 알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좀비들을 패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피오가 코를 부여잡았다.
"으.. 냄새.. 우웩!...."
"진짜 무식하다."
신동이 쭈그려 앉아서 작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손전등을 꺼버렸다.
그러자 좀비들의 움직임이 순식간에 둔해지고 본인들이 가야 하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떠듬떠듬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아무리 좀비들이 방향을 잃었다고 해도 무식하게 불러 모으던 동현 탓에 다른 곳보다는 확실히 좀비들이 많이 모여있어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이 상황에 안전한 곳은 없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을 하던 그들은 장독대의 벙커로 향하기로 했다.
장독대가 아직 벙커에서 살긴 하지만 그들이 장독대를 밖으로 끌어냈을 때, 심리치료를 받았기에 장독대는 '그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역시나 벙커의 비밀 입구로 가서 들어가자 입구 앞에서 초조해 보이는 장독대가 보였다.
"아! 역시 당신들! 무사할 줄 알았다고!"
본인을 구해줄 때와는 달리 성격이 변해 쌀쌀맞은 우리에게조차 여전히 친절한 장독대였다.
"어디 다치진 않았나?"
"다행히도."
"히야, 이게 얼마만의 불빛이냐-."
장독대가 우리를 쫓아다니며 이것저것 물었지만, 우리는 그것이 귀찮아 설렁설렁 대답해주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좀비가 진짜 나온 거야?"
"네, 네-."
"어떻게 안전하게 여기까지 온 거야?"
"알아서 잘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이것저것 질문하던 장독대가 결국 제자리에 멈춰 서더니 씁쓸하게 웃었다.
"하하.. 당신들 그때와는 정말 성격이 딴판이 됐네."
"....사회의 쓴 맛을 봤으니까."
"뭐.. 그래. 피곤할 텐데 내가 너무 붙잡고 있었네. 벙커 구조는 다 알지? 알아서들 쉬어."
"예-."
장독대가 말하는 기억 따위, 우리에겐 없다.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서 협력하고, 웃으면서 문제를 풀었다니. '우리'의 기억에는 없는 일이다.
장독대가 말하는 '그들'따위.. 전혀 모른다.
저 녀석도 참, '그들'처럼 성격 이상하다니까..
이것저것 대충 주워 먹으며 옷장에서 총을 꺼내 상태를 살폈다.
"총은 쓸만하겠네.. 동현이 형. 하나 들어요."
"..."
동현은 총만 받아 들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힘이 센 호동도 총을 들어주면 좋으련만 세상 소심하고 누군가 다치는 꼴을 못 보는 호동은 총을 보면 기겁하기만 할 뿐 이 상황 속에서도 달라질 생각을 안 했다.
결국 호동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총을 챙기고 그날 밤은 일단 쉬기로 했다.
제대로 자지 못 한 채 이리저리 움직이느라 쌓인 피곤이 이만저만이 아니였기에 소파에 몸을 맡긴 채 금방 수마에 빠졌다.
*
*
*
"으음.."
익숙하지 않은 잠자리가 불편했던 탓인지, 평소에 한 번 잠들면 잘 깨지 않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금방 눈이 떠졌다.
다시 잠들기는 힘들 거 같아 몸을 일으키자, 담요가 흘러내렸다.
"담요? 장독대가 덮어둔 건가."
담요를 치우고 일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는 나처럼 소파에 기대 잠을 청하고 있는 호동과 총을 꼭 껴안고서 문에 기대 자고 있는 동현.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파악도 안 되는 건지 침대에서 편안하게 꿀잠을 자고 있는 신동과 피오가 보였다.
김종민은 또 어딜 간 거야..
아까 다들 이것저것 꺼내 먹을 때 피곤해서 입가심 수준으로 조금만 먹었더니 배에서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래서 식당으로 향하자 그곳에는 종민과 장독대가 앉아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너랑 이렇게 나란히 앉아서 술 먹는 건 처음이네."
"..."
"너희 정말 이상해. 전과 같았으면 다들 화목하게 둘러앉아 함께 회포를 즐겼을 텐데 말이야. 너는 술 같은 거 입에도 안 댔고 말이야."
"...."
반응을 일절 없고 그저 술만 홀짝이는 종민임에도 장독대는 이것저것 말을 늘여놓았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도 대답도 안 해주고 말이야."
"...'그들'은 죽었어."
"그게 무슨.."
"우리는, '그들'이 아니-."
"종민이 형.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무슨 대화를 하나 지켜보려다가 종민이 이상한 말을 하려 하기에 급히 종민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 배고파서 깼나?"
"어. 알아서 꺼내 먹는다."
"그래. 먹고 싶은 만큼 먹어."
먹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좀비에게 죽기 전에 굶어 죽으면 안 되니까 의무적으로 포만감이 느껴질 정도로만 입에 넣고 등을 돌렸다.
"종민이 형, 이상한 말 지껄이지 마세요. 두 분 다 이왕이면 일찍 자고."
등을 돌린 채로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고 그대로 발을 놀려 방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한동안 그곳에서 그렇게 지냈다.
의식주 전부를 그곳에서 해결했다.
비록 옷은 개 같은 동물잠옷 밖에 없었기에 집에서 나올 때 챙겨 왔던 여벌의 옷을 빨아서 돌려 입어야 했지만 잘 수 있었고, 씻을 수 있었고, 먹을 게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좀비 사태는 너무도 오래 이어졌으며 그 많던 식량들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7명이서 먹기에는 적은 양이였던 건가.
결국 우리는 좀비들 몰래 밖으로 나가서 식량을 구해오기로 했다.
"뉴스도 없고.. 좀비 사태가 안 끝났다는 것 외에는 밖에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데 진짜 나가도 괜찮겠어?"
"괜찮으니까, 당신은 여기서 기다려."
"알겠어.. 조심히 갔다 와."
장독대가 우리를 걱정했지만 걱정 따위는 필요 없는 우리는 밤이 되자 총과 휘두르기 좋아 보이는 무기들,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구어어어억.."
"꺄아악!"
"가악.."
평화로웠던 벙커 안과는 달리 밖은 좀비들의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소리로 가득했다.
"개판이네.."
어두운 밤거리 중에도 더욱 어두운 곳, 좀비들이 그나마 적은 곳을 골라 걸어 다니며 여러 가게를 들렀다.
하지만 좀비 사태가 시작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대부분 가게들은 이미 털린 상태였고 7명의 식량으론 턱없이 부족한 것들만 발견될 뿐이었다.
"너무 늦어버렸나.."
뻐어억!
피만이 낭자한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뒤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냉장고 불빛. 문 닫아."
"아. 네."
동현의 말에 급히 냉장고 문을 닫긴 했지만 이미 소리를 듣고, 불빛을 보고 몰린 좀비들 탓에 이 건물을 나가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어쩌냐....
잘못 움직이다가는 그대로 좀비와 부딪혀서 좀비 밥이 될 신세에 꼼짝도 못 하고 주변을 둘러보기만 할 때 발 밑에 버려진 빈 깡통이 보였다.
깡통.... 깡통이라..
좀비와 부딪히지 않게 조심조심 그 깡통을 들어 피오에게 내밀자 용케도 의미를 알아들었는지 미래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깡통이 멀리 집어던졌다.
탁! 툭! 구르르-..
벽에 부딪혔다가 바닥에 떨어지고 원형의 깡통이 구르는 소리에 좀비들은 전부 그곳으로 몰려갔다.
그 틈에 서둘러 건물을 벗어나는데 어째서인지 머리에서 어떠한 말이 울렸다.
"와, 피오야. 너 진짜 잘 던진다. 대단해. 덕분에 빠져나왔네."
분명 내 목소리였지만, 말투도, 목소리 톤도 전부 다른 그 목소리가 머리에서 울리자 삐이이- 하는 듣기 싫은 이명과 함께 급격한 두통이 찾아와서 비틀거리다가 돌을 차 버렸고 다시 한번 좀비가 모여들었다.
최대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해 봤지만 금세 모여든 좀비들 탓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급하게 이동한 곳의 바닥은 피 웅덩이가 있는 것만 빼면 너무도 깨끗한 곳이라서 무언가 던질 것도 없었다.
다들 이 상황을 어떡해야 할지 몰라 머리를 쓰고 있을 때 나는 겨우겨우 풀리려는 다리를 바닥에 지탱하며 두통을 털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두통은 물론 이명까지 심해져만 갔다.
양손으로 머리를 붙잡고서 그 모든 걸 감내하고 있을 때 이명 사이로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날 죽였어?"
나다..
내가 나에게 물어왔다. 왜 자기를 죽였느냐고.
하지만... 하지만 이 목소리는 내가 아니었다.
나이지만, 나일수가 없었다.
"본래 우리였다면 이 상황에서 한 명이 희생을 했을 거야. 좀비를 유인해. 너의 목숨을 희생하고 저들을 지켜."
'하지만... 하지만 저 자들은 내가 그런다고 해서 고마워할 위인들이 아니야.'
그 목소리에 말을 걸 듯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허탈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우리는? 너희가 우리를 죽여서 우리가 고마워하기라도 했니? 아니면 너희가. 아니, 네가. 행복하기라도 했어?"
'...'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세계로 이동됐고.. 그 세계에는 이미 '내'가 '우리'가 있었다.
'그들'이 있는 이상, 우리는 죽어야 했다.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이 없으니 우리가 죽어야만 했다.
하지만 죽기 싫었다. 살고 싶었다. 갑자기 이런 세계로 이동된 것이 우리의 잘못이.. 아니, 내 잘못은 아니잖아....
이왕 죽을 거라면 함께해서 평생 불행했던 우리보다는 함께라서 믿을 수 있고, 함께라서 힘을 낼 수 있고 함께라서 행복했던 너희가 죽는 것이 맞잖아. 너희는 이미 행복을 맛보았으니까 행복을 맛보지 못한 우리를 위해 그 정도 희생은 해 줄 수 있는 거잖아. 그런 거잖아...
"희생? 너희는 그런 걸 희생이라고 부르나 보지? 아니. 그건 살인이었어. 그 가해자는 너. 피해자는 나지."
'하지만! 하지만 우리는 동일인물이잖아! 인격 하나를 지운 것과 뭐가 달라?'
"달라. 아주 많이. 우리는 동일인물임과 동시에 동일인물이 아니야. 변명하지 마. 네가 한 것은 살인에 그치지 않아. 우리를 죽이고 나서 너는 줄곧 우리처럼 되고 싶었잖아. 아니야?"
'아니야!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지껄이지 마!'
누군가 내 몸을 흔들었지만, 또 다른 '나'와 대화하는 것에 정신이 팔린 나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아니? 넌 우리처럼 되고 싶었어. 그러지 않으면 네가 걱정이라는 것을 할 리가 없잖아.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쓸 리도 없어. 넌 네가 제일 중요한 이기적인 사람이니까. 하지만, 우리를 보고 너는 달라졌잖아? 누군가를 걱정한다는 것을 배웠고, 누군가가 신경 쓰이는 게 어떠한 감정인지 베웠고, 그들이 너에게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배웠잖아. 아니야?"
'아니야! 나는... 난...... 난...'
난 뭐지? 이 세계의 나를 죽여놓고 처음부터 이 세계의 사람이었던 척 살아가는 거짓말쟁이? 사기꾼?
그저 살고 싶었던 나약한 녀석? 겁쟁이? 난.... 난 뭐야..? 난.... 누구지..? 저들에게 나는... 나에게 저들은 뭐지....?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저들과 함께 하는 이유는... 뭐지....?
"우리는 너희를 위해 희생'한' 게 아니야. 너희의 이기심 때문에 희생'당한' 거야. 그 사소한 차이 하나가 전혀 사소하지 않다는 걸, 지금의 너는 알잖아? 그리고 그 사소한 차이 하나로 네가 달라졌다는 것도. 안 그래? 사소한 차이가 네게 있어 사소하지 않은 변화를 만든 거야. 네게 그들은 뭐니?"
'...짜증 나는 녀석들.. 함께 있어도 웃음은커녕 화만 나오게 하는 녀석들... 하지만 평생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망설이다가 한자한자 힘겹게 내뱉었다.
'지켜... 주고 싶은 사람들..'
"그럼 결정됐네. 희생당하는 게 아니라 희생하는 걸 배워. 지금이 배움의 순간이고, 배움의 기회야."
그 말과 함께 누군가 가볍게 등을 미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자 실제로 내 발이 아까보다 앞으로 나가 있었으며 고개를 돌리자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이들이 보였다.
뭐하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피오.
거의 처음으로 웃음을 잃은 신동.
한쪽 눈썹을 들어올리며 돌파할 수 있다는 듯 총을 살짝 들어보이는 동현.
한 쪽 손을 내게로 내민 종민.
달빛 아래에 비친 눈물이 반짝. 하고 빛나는 호동.
정말 짜증 나고... 정말 미운.. 내 '가족'들..
난 처음으로 그들을 향해 웃어 보인 뒤,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무언가 이상한 걸 눈치챈 건지 종민이 소리쳤다.
"너 뭐하려-."
그러나 내가 더 빨랐다.
"인간 여깄다. 이 좀비 새X들아!"
그러고 나는 최대한 그들과 먼 곳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달빛만에 의지한 채로 정말 열심히 내달렸다.
혹시라도 그들이 다시 되돌아가지 않도록 계속 소리를 내지르면서 달리려니 힘들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쩌면 나는.. 그들을 죽인 그 순간부터 '죄책'이라는 이름으로 숨기고 있었던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게 아닐까.
서로를 위해 당연하다는 듯 희생하는 그들이.
함께하는 것이 당연한 그들이.
그리고 그들 주위에는 당연하다는 듯 따라오는 웃음들이.
그것들이 너무 부러웠던 것 같다.
그러한 감정들을 죄책이라는 이름으로 꽁꽁 숨기고서 내 마음을 들여 볼 생각조차 안 했던 것 같다.
어느새 내 눈에도 호동.. 아니, 호동이 형의 눈에 매달려 있던 눈물이 매달려 있었다.
내 눈물도 그의 눈물처럼 달빛에 비쳐 반짝이고 있을까?
작지만 확실하게 빛나는 그 달빛을 인식하지 못하는 좀비들 덕에 형들은 안전할 거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항상 그래 왔듯. 형들은 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것이며 나 또한 어떠한 형식으로든 형들과 함께 할 것이다. 다른 인간들 속에서 작지만 확실하게 도움이 되는 존재로.
눈앞이 뿌예지고 눈물이 흘러내려 턱에서 모이는 그 모든 걸 느끼며 후련하게 웃었다.
오늘 나는, 죄책이 아닌 부러움이라는 내 감정을 그대로 직시했으며 희생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배웠다.
죽음을 앞에 둔 것 치고는 제법 값진 마지막 아닐까.
그렇게 나는, 좀비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시원하게 웃어 보이고 눈을 감았다.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들을 느끼며 매우 후련하게.
그렇게 내 의식은 점점 흐려져갔다.
그 와중에도 목소리가 들려왔다.
"행복해?"
라고..
응. 엄청 행복해. 너는 항상 이런 감정을 느끼며 형들과 함께 했겠구나. 이게 행복이구나.
나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 정말 값진 것을 많이 배우고서 그렇게 의식을 잃었다.
나의,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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