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러

오해

어서 와 2024. 4. 16. 23:47

그들은 내가 어떤 상황에도 사람을 죽이지 못할 거라 오해(誤解)했으며.



똑똑.

 

들어오게.”

 

끼이익.

 

어유-, 쯧쯧쯧, 여기저기 손을 많이도 댔군.”

.”

그래, 그렇게 손을 많이 대서 자네의 기도에 응답한 신은 있었나?”

.”

 

신의 응답 따위는 없었다. 나를 이렇게 만들고서는, 그 어떤 응답도.

차라리 나를 순수한 영혼 같은 걸로 만들지나 말지. 이런 상황에 나를 집어 던지지 좀말지.

 

신이 자네를 그렇게 만든 게 아니네.”

?”

자네가 그런 사람이었을 뿐이야. 신이 자네를 그런 사람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자네가 그런 사람으로 자란 게야. 자네가 강했던 게야.”

예까지 오느라 힘들었지? 고민도 많았을 게야, 예까지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을 게야.”

 

종교란 종교는 다 믿어 본 것만 같다. 나를 이 지옥에서 꺼내줄 수만 있다면, 어떤 신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뭐든 붙잡아 봤다. 그런데도 나아지는 것은 없어서, 오히려 상황은 점점 악화 되어 갈 뿐이어서. 막막했다. 너무 막막해서. 이제는 보기만 해도 몸이 떨려오는 한복을 입은 사람에게로 찾아 왔다. 나의 의지로, 나의 두 발로, 두 다리로. 그렇게 무서워하던 한복을 마주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무서워해야 당연한 한복 앞에서, 경계해야 하는 한복 앞에서, 방심하면 안 되는 한복 앞에서.

 

이미 많이 참아 왔을 것인데, 예까지 와서 참아 뭐해. 가끔은 좀 터트려도 되네.”

 

나는 왜 눈물이 흐르는 것일까. 위안을 얻는 것일까. 내가 이리도나약했던가.

 

자네가 나약한 게 아니야, 자네는 버틸 만큼 버텼어.”

, 으흑.”

어린 것이, 바르게 컸는데 바르지 못한 것들에게 붙잡혀 얼마나 힘들었겠어.”

.”


그래, 속은 좀 시원해?”

, 죄송합니다.”

여기에 자네 잘못이 뭐가 있어. 그래, 이미 다짐은 한 것 같고. 내게는 왜 왔나?”

. 제가 그들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종민을 가만히 보던 무당이 한숨을 내쉬었다.

 

힘들어. 한 마리면 가능했지, 두 마리는 힘들어. 모든 걸 반사해서 자신의 것을 품질 못하는 자네와 모든 걸 흡수해 전부 자신들 것으로 만드는 그들. 이건 절대적으로 자네가 불리한 싸움일세.”

. 혹시 둘 다 제 몸을 차지한 상태에서 제 몸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됩니까?”

주도권 싸움 시작이지. 자네와 그들이 아니라, 그 두 마리 끼리.”

제 몸을 두고 둘이 싸우는 겁니까?”

그래, 그러니 무조건 버텨. 의식을 잃는 순간 자네의 몸은 더 이상 자네의 몸으로 존재할 수 없을 걸세.”

 

이미 예상하고 있던 사실인데도 직접 입으로 전해 듣는 것은 또 다른 일인지라. 이미 잔뜩 뜯겨 딱지가 내려앉은 손끝을 만지작거리다 고개를 들어 무당과 눈을 맞췄다.

 

그렇다면.”



, 어디 갔다 와요?”

잠시 밖에.”

니는, 혼자 댕기지 말라니까는!”

아이, 조심히 갔다 왔어요. 병재랑 동현이는요? 안 보이네.”

 

차마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한 종민이 화제를 돌렸다.

 

약국에, 약이랑 붕대 떨어져서 사러 갔어요.”

.”

형 잘못 아닌 거 알지?”

. 당연하지.”

 

가끔 몸을 뺏길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그 어떤 기억도 남아 있지 않은데. 깨어나고 보면 동생들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겨있다. 처음에는 무시 가능할 정도로 자잘했으며, 가끔이었는데. 가면 갈수록 위험하다 싶을 정도의 상처들이, 너무 자주 생겨나고 있다. 기억이 없는, 나로 인해.

 

기억이 없다는 핑계만을 대고 있는, 나로 인해.

 

모든 것은. 나로 인해.

 

, 이상한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죠?”

에이, 설마.”

 

그래도 아까 한참 쏟아냈다고, 한결 편하게 웃어 보인 종민이 호동의 눈치를 살짝 봤다.

 

불안하게 와 눈치를 보고 그라노.”

. 부탁이하나 있는데요.”

부탁이요? 뭐요?”

그게. 당분간 혼자 지내도 될-.”

되겠나!”

되겠어요?!”

 

호동과 지훈이 동시에 소리치자 몸을 움찔 떤 종민이 어색하게 웃었다.

 

안 되려나-?”

갑자기 왜 그래요?”

그게. 약점을 없애 보면 어떨까 싶어서.”

그래도 안 돼요!”

혼자 있다가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니는!!”

 

평소 다들 아니다 아니다 하면 금방 뜻을 굽히는 종민이지만, 이번에는 그럴 생각이 없는 건지 소심하지만 확실하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

 

천해명이든 천마도령이든. 나타나면 형이랑 애들을 인질로 잡잖아요. 그럼 전 또 아무것도 못 하고 몸을 넘기게 되고. 그러면 또 애들은 다쳐있고.”

하지만 위험한 건 사실이에요, . 혼자 있다가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아니야, 지금까지 나 몸 제대로 뺏긴 적 한 번도 없잖아. 나 이겨낼 수 있어. 오히려 약점이 없으면, 더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우리는? 우리는 니가 잘못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그냥 니 보내두고 몸 편히 있으라고? 그게 될 거라 생각하나.”

.”

 

손끝을 하도 건드리자 딱지가 떨어져 나가 피가 베어 나왔다.

 

제발요.”

. .”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그냥 자고 일어난 기분이에요. 자고 일어났는데 동생들이 다쳐있어요. 나 때문에. 나는 자고 있었을 뿐인데, 내 손으로 동생들을 위협했어요. 이제는. 이제는 끝내고 싶어요.”

니 잘못 아니라고!”

알아요! 근데 내 존재가 동생들한테, 그리고 형한테 위협이 된다는 사실에는 변하는 게 없잖아요!”

 

소리 지르려던 게 아니었는데. 화내려던 게 아니었는데.

 

살을 파고들 정도로 억세게 주먹을 쥐자 지훈이 조심스레 손을 맞잡았다.

 

. 미안해.”

형이 사과할 일이 아니에요. 형은 그저, 착했을 뿐이에요.”

.”

일주일, 일주일이면 되죠?”

지훈아!”

.”

 

화난 호동이 무섭지도 않은지 눈을 똑바로 맞추며 지훈이 귀엽게 웃었다.

 

형도 그랬을 거잖아요.”

무슨.”

종민이 형보고는 형 잘못 아니라고, 죄책감 가지지 말라고 그러지만. 종민이 형이 아니라 형이었다고 해도. 죄책감 가졌을 거고, 종민이 형이랑 똑같은 선택 내렸을 거잖아요.”

.”

그러니까 저희, 한 번만 져줘요, ?”

 

막내의 애교 섞인 부탁에 호동이 어쩔 수 없이, 정말 싫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일주일은 안 된다. 너무 길어.”

네네, 닷새?”

이틀.”

아니, 이틀 안에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이틀은 너무하죠, !”

많이 양보한 거거든!”

닷새!”

 

중간에 약국에서 돌아온 병재와 동현도 웬일로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고 있는 호동과 종민을 말렸지만, 결국 둘의 의견은 섞이지 못했다.

 

이러다가 그냥 계속 같이 있겠어요.”

아니, 애초에 니는 닷새나 혼자 있을 자신이 있나. 금마들이 니한테 안 가고 우리한테 올 거라고는 생각 안 해 봤나. 닷새나 우리 안 볼 수 있다고? 진짜?”

.”

애초에, 우예 이길 건데. 니 혼자 있는다 해서 금마 둘을 니가 상대할 수가 있나?”

해 봐야 아는 거잖아요! 계속 이렇게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 봐야죠!”

뭐라도 해 본 결과가 최악이면 우얄긴데!”

, 진짜 형들!”

그만 싸우고 저녁이나 먹어요! 점심 지나서부터 저녁때까지 싸워, 무슨!”

 

둘의 싸움에 질린 동생들의 성화에 조용히 저녁을 먹고서 호동은 혼자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 .”

형이 이해해요. 맏형이잖아요. 호동이 형 눈에는 형도 마냥 어려 보일 텐데, 혼자 위험한 귀신 둘을 상대하겠다 하니. 걱정되는 게 당연하죠.”

그래도뜻은 안 굽힐 거죠?”

.”

우리 형들, 참 독해. 자요.”

 

병재가 예쁘게 깎은 사과를 접시에 담아 건넸다.

 

대화하고 와요. 형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저희는 받아들일게요.”

고마워.”

아니에요.”

 

종민까지 방으로 들어가고 다행히 언성이 높아지는 일은 없었지만, 오래. 아주 오래 둘 중 그 누구도 나오지 않았다.

 

동생들은 그저, 형들은 옳은 선택을 할 것이라며 기다릴 뿐이었다.



니 진짜 조심해라.”

아이, 몇 번이나 당부하시는 거예요. 겨우 사흘이에요, 사흘.”

사흘이나죠 형. 밥 제대로 먹고, 잠 잘 자고, 아니다 싶으면 빨리 마음 접고 돌아와요.”

알았어, 너무 걱정하지 마.”

 

문을 열기 전, 종민이 지훈의 손을 잡는 척 종이 하나를 슬며시 건넸다.

 

?”

잉크의 색이 이상해진다면, 적힌 주소로 와 줘.”

 

작은 종민의 목소리도 놓치지 않고 캐치한 지훈이 형들에게 티 나지 않을 정도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히 갔다 와요, .”

, 갔다 올게.”

 

문을 열고 집을 나선 종민이 순식간에 몸을 덮치는 차가운 공기에 숨을 후, 내셨다.

 

바스락.

 

주머니 안에 손을 넣자 바스락, 여러 장의 종이가 손안에 들어왔다.

 

내 주소를 하나 알려줄 테니, 그곳에서 이 부적을 사용하게. 신이 부디 자네를 외면하지 않길 같이 빌어주겠네.’

 

. 가자. 신이 나를 외면한다 하더라도, 더는 끌면 안 돼.

 

무당이 알려준 주소의 구석진 공간에 버려지듯 위치한 건물은, 온통 하얗기만 했다. 하얗고, 하얗고. 또 하얬다. 모든 것을 반사해 버릴 것처럼.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간 종민이 조용히 자리에 앉아 그들이 오길 기다렸다.

 

계속해서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있었는데, 쥐가 나지도 찌뿌둥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배가 고프다거나, 잠이 오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하얗기만 한 이 공간은, 참 이상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쓰고 있을 정신은 없다. 그저 움직이지 않아도 되고, 자지 않아도 되고, 먹지 않아도 되는 이 환경이, 다행일 뿐이었다.

 

그렇게 꼬박 하루를 가만히 앉아 기다리던 종민의 눈앞에,

 

마침내.

 

이리 판을 깔아주니, 어찌 감사 인사를 해야 할지.”

포기가 생각보다는 빠르군.”

 

그들이 나타났다.

 

.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이제 와서 포기할 생각은 없는 거죠? 전혀?”

이미 답을 알면서 묻는 건 무슨 심보인지.”

이렇게 쉽게 포기할 거라면 시작조차 안 했지. , 네가 다른 죄 없는 사람을 여럿 죽일 정도로 내게 재미를 선사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 알았어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들과 눈높이를 맞춘 종민이 쓰게 웃었다.

 

줄게요, 제 몸.”

오호라.”

누구에게?”

둘 다에게. 주도권 싸움은 알아서 해요. 저는 저를 버릴 테니.”

 

종민의 말이 나쁘지 않다 생각한 것인지 둘은 만족스레 웃었다.

 

지겨운 색색의 한복에 종민이 질끈, 눈을 감았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그리 두려움에 떨면서도, 말은 잘하는군.”

, 들어나 보지.”

이제 그만 건드려요. 호동이 형도, 동생들도.”

다른 인간들은?”

…….”

 

나도 참이기적이구나.

 

몸의 주인이 몸을 쓰는 것에, 제가 어찌 관여할 수는 없죠. 죽이지는 마셨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아니까. 그저, 동생들이랑 형만. 건들지 않겠다고 약속해요.”

그 정도야 뭐, 약조하지.”

귀찮긴 하지만, 그 몸을 주는데 뭐.”

영혼도 당연히 넘기는 거겠지?”

. . 다 가져요, .”

좋아, 계약 성립이다.”

나쁘진 않군.”

 

둘이 납득하자, 종민이 심호흡하듯 숨을 한 번 길게 내쉬고서는 팔을 벌렸다.

 

그래요. 그럼 어디 한 번, 해봐요. 지독한 주도권 싸움.”

 

종민의 허락이 떨어지자, 둘은 웃으며 곧바로 종민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커흑! .”

 

순간적으로 몰려오는 고통에 밭은 숨을 내뱉던 종민이 이를 악물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부적을 꺼내 자신의 이마에 붙였다.

 

다행이야. 이 쓸모없는 영혼 하나 얻겠다고, 그리 바보같이 굴어줘서.”

 

몸 안에 갇힌 두 영혼이 날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 날뜀은 몸에 고스란히 전해져 난생처음 겪어 보는 극한의 고통을 선사했다.

 

입에서는 차마 삼키지 못한 침이 흘러나왔으며, 눈에는 눈물이 맺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핏발 선 눈은 실핏줄이 다 터져 붉게 물들었다. 손톱은 여린 손바닥에 파고들다 못해, 완전히 박혀버렸으며 이를 어찌나 악문 건지 갈려 나가는 듯했다. 몸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기울었으나, 종민의 두 다리는 강했다.

 

아니, 강한 것은 두 다리가 아니었다.

 

형을, 동생들을 어떻게든 지켜내겠다는 그 다짐이, 그 마음이, 그 사랑이.

 

그 무엇으로도 흠집 낼 수 없을 만큼 강했다.

 

몰래 숨겨뒀던 다른 부적들도 마저 꺼내 양 손목과 발목에 둘러 붙이고 마지막으로 남은 부적을 가슴 근처에 붙였다.

 

그리고.

 

미안, 병재야. 네가 날 욕 해도, 뭐라 할 말이 없네.

 

그들은 순수한 영혼인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사람을 죽이지 못할 것이라 오해(誤解)했으며 오해(鏖害)하려 했으나.

 

나는 오해(吾害)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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