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러

어찌, 감히, 그리 부르겠는가

어서 와 2024. 4. 22. 22:07

이게이게 무슨 짓이야!”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인간이란 존재가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 먼 옛날.

 

저들이 사특한 힘을 사용해 우리를 죽이려 했다!”

아니야!”

 

인간과 함께하는 여섯 재해(才該)가 있었다.

 

.”

저들을 죽여야 합니다!”

저들이 이상한 힘을 사용하여 저희를 죽이려 들었습니다!”

 

인간은 어리석었으며, 재해는 어리석은 인간을 감당하기엔 물렀다.

 

우리가 언제!”

살리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인간은 왜 죽는가! 인간은 왜 고통받는가!”

그것이 순리니까!”

그딴 말로 인간을 현혹하려 들지 마라!”

 

첫 번째 재해(才該)는 인간에게 불을 선물했으며, 크고 작은 불을 피워 내 가끔은 인간을 돕기도, 가끔은 인간에게 불을 함부로 쓰면 위험하다 경고하기도 했다.

 

너 때문에 산이 다 탔어! 누군가는 살 곳을 잃었고, 누군가는 가족을 잃어야 했다!”

. 제가 한 짓이 아입니더.”

그걸 누가 믿어! 모두가 네가 불을 다루는 것을 보았다!”

경고했잖습니까.”

 

두 번째 재해(才該)는 인간의 생존에 방해되는 산을 치워주었으며 재해(才該)가 막아줄 수 없는 지구의 힘이 인간을 덮치려 할 때, 가장 먼저 경고하는 역할을 했다.

 

산이 무너져 내려 저희 아이를 덮쳤어요! 저희 아이는 지금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다고요!”

지키려 했어.”

 

세 번째 재해(才該)는 지루한 인간의 삶에 진동이라는 재미를 선물했다. 진동은 때로는 그들에게 재미가 되었으며, 놀이가 되었고, 친구가 되었다. 또 경계가 필요할 때면 땅을 갈라 그 무엇보다 확실한 경계선을 그어 주었다.

 

땅이 흔들리고 갈라져서! 내 집이 무너졌다!”

그건 내가 한 것이 아니야! 곧 지진이 올 테니 도망치라고 경고했잖아! 다들 대피하는 사이 왜 그곳에 남아있었던 거야!”

그런 경고 따위! 듣지 못했어요! 저희 어머니가 무너진 집에 깔려 돌아가셨다고요!”

 

네 번째 재해(才該)는 인간에게 딱 맞는 온도를 선사했다. 가끔은 덥게, 또 가끔은 춥게. 그들이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계절에 맞게 행동할 수 있도록. 동시에 그 누구도 더위에, 추위에 쓰러지지 않도록. 인간의 생존을 위해 언제나 노력하였다.

 

요즘 온도가 이상해! 너무 덥다고요!”

사람들이 열사병으로 쓰러지는데, 뭘 하는 거야!”

나는 최대한 노력해서 조절했어.”

무엇을 노력했단 말인가, 대체 무엇을!”

 

다섯 번째 재해(才該)는 하얀 먼지를 내려 주었다. 인간들이 계절감을 느낄 수 있게, 또 마냥 춥게 계절을 넘기지 않고 그 계절을 즐길 수 있게. 밖에 나오는 것이 위험하다 판단될 때에는 많은 양의 먼지를 쌓아 인간들이 집 밖으로 나오지 않게 보호하였다.

 

어디는 눈이 너무 많이 오고, 어디는 전혀 안 오고! 이게 뭐야!”

아오, 전부 다 공평하게 내리면 나야 편하지! 지역 특성은 고려해야 할 거 아니냐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상한 힘으로 우리 인간들을 세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마!”

 

여섯 번째 재해(才該)는 인간에게 물을 선물하였다. 첫 번째 재해(才該)가 선물한 불을 남용하여 불이 났을 때는 그 불을 꺼주었으며, 목말라 괴로워하는 이들에게는 목을 축일 수 있게 해주었으며, 그들의 농사가 잘되길 바라며 땅을 촉촉이 적셔주었다.

 

강물이 불어나고, 홍수가 나서 사람들이 실종되고, 익사했다!”

내 아이가 불어 죽은 채 발견됐을 때 그 충격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글쎄, 그건 저희가 어떻게 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니까요? 저희 힘이 절대권력이 아니에요, 지구의 힘은 못 이긴다고요.”

사특한 힘을 쓰는 주제에, 가르치려 들지 마라!”

.”

 

인간들은, 재해가 자신을 도왔다는 것은 까맣게 잊고, 재해를 봉인하길 원하였다.

 

재해들이 봉인되고, 세상은 엉망이 되었다.

 

계속되는 가뭄에 인간들은 굶주렸다. 크고 큰 화재가 일어나도 그 불을 끌 비 한 방울 내려 주지 않았다. 지구의 온도는 오락가락하며 지독한 더위를 겪기도, 빙하기를 거치기도 했다. 멈추지 않는 폭설로 인해 그들은 하얀 세상에 갇혀도 봤다. 끝나지 않는 진동이 모든 땅을 갈랐으며, 모든 건물들을 내려앉게 했고 사람들을 죽음의 길로 인도했다. 산은 계속 무너져 내려 인간을 덮치고, 또 덮쳤다.

 

이에 인간들은 옛 기록을 토대로 이러한 현상들을 자연재해(自然災害)’라 칭했다.


. 지독하네.”

 

봉인된 채 바다 깊은 곳으로 버려졌던 첫 번째가 눈을 떴다. 봉인은, 재해의 힘 앞에 쉽게 풀렸다. 세상이 엉망이 되면 금방 포기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렇기에 반항하지 않고 쉽게 봉인 당해 주었으나. 극심한 가뭄에 바다가 전부 말라버리는 사이에도, 인간들은 봉인을 풀지 않았다. 아주 오랜만에 눈을 떴다. 바다에 버려진 것이 마지막 기억이건만, 바다는 존재하지 않았다. 첫 번째가 혀를 차며 두 번째를 찾아 나섰다.

 

두 번째는 땅 깊숙한 곳에 묻혀 있었다. 산에 깔려 죽은 인간들의 심정을 헤아려 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말라버린 땅을 파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 세 번째를 먼저 찾기로 했다. 세 번째는 땅을 갈라 버릴 수 있으니.

 

세 번째는 위험한 절벽에 봉인되어 있었다. 그는 첫 번째의 부름에 응답하듯, 머지않아 봉인을 깨고 일어나 절벽을 타고 손쉽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땅의 무서움을 알라며 절벽에 봉인해 두었지만, 세 번째 앞에서 절벽은, 그저 잘 나 있는 길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세 번째가 땅을 가르자 두 번째가 발견되었다. 땅 깊은 곳에서 빠져나온 두 번째는 세 번째와 함께 네 번째를 찾으러 갔다. 첫 번째는 홀로 다섯 번째를 찾으러 갔다.

 

그리고 그들은 한곳에서 만나게 됐다. 첫 번째가 인간에게 선물했던, 절대 꺼지지 않는 불. 그 속에 네 번째와 다섯 번째가 나란히 봉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불의 뜨거움은 그저 간지러울 뿐인 첫 번째가 불 속에서 네 번째와 다섯 번째를 꺼냈다.

 

그들은 함께 가장 소중한 여섯 번째를 찾으러 갔다.

 

하지만 여섯 번째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말라버린 바다와 강의 바닥을 찾아도, 말라 비틀어 죽어버린 나무들이 스산하게 모여있는 산을 찾아도, 절벽을 찾아도, 땅 밑을 찾아도, 평범한 민가를 찾아보아도. 여섯 번째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알게 되었다.

 

인간을 가장 좋아했던 여섯 번째를, 인간들에게 가장 잘 웃어 주던 여섯 번째를, 인간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던 여섯 번째를, 인간과 가장 유사한 여섯 번째를.

 

무참히 난도질해 죽여버렸음을.

 

아아, 그들에게 있어 가까운 존재는 보호해야 할 존재가 아니었다. 가장 만만한 존재였으며, 가장 죽이고 싶은 존재였으며,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재해(才該)는 인간을 우습게 보았고, 인간도. 재해(才該)를 우습게 보았다.

 

재해(災害)는 분노하였다.

 

그들은 인간에게 원망의 감정이 있었을 뿐, 증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소중한 여섯 번째가 더 이상 그들에게 웃어 보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그들은 인간을 증오하였다. 인간에게 분노했으며, 모든 감정을 인간에게 쏟아냈다.

 

가히, 천재(千災)라 부를 만한 재해(災害)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재해(才該), 인간을 위해 태어난 존재. 그들은 끝까지 인간을 증오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분노를 쏟아낸 지 얼마나 지났을까. 살아남은 인간은 없었다. 모두가 죽었다. 여섯 번째를 배신한 이들의 피는, 하나도 남지 않고 모조리 사라졌다.

 

재해(才該)는 정신을 차리고 일하기 시작했다. 지구에는 새로운, () 인간이 태어났다. 그들에게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며 재해는 일했다. 다시는 전과 같은 일이 일어나질 않길 바라며, 인간과 닿는 것을 엄히 여겼으며 인간의 삶에 깊게 관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정을 붙이지 않았고, 그들에게 웃어 주지 않았고, 그들과 대화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여섯 번째와 반대되는 행동이었다.



수업은 여기까지 할게요. 쉬세요.”

으어어.”

, 지루해.”

무슨 역사 시간에 신화를 배우냐.”

그러게.”

 

여섯 번째는 없다. 이 세계는 가뭄과 함께 숨 쉬고 있으며, 물 부족을 떠안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근데 이거 신화 맞냐. 좀 사실 같기도.”

뭐야, 너 혹시 그런 거 믿는 편? 산타도 믿냐?”

? 아니, 뭔 소리야! 가뭄이 아직도 안 끝났으니까 그냥 하는 말이지! 솔직히 비가 어떻게 내리는 건지, 너희는 안 궁금하냐?”

괜찮아, 바보야. 울어도 돼. 사실 산타는 없거든.”

, 진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지훈이 낙서를 끄적였다.

 

. 비가 내리면 기분 좋을 것 같은데. 이 신화는 뭔가 들을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단 말이야. 비가 그립다고 해야 하나. 정작 비 내리는 건 본 적도 없으면서, 그리울 수가 있나?

 

여전히 비는 내리지 않는다. 다섯 번째의 노력으로 약간의 물이 지원될 뿐. , 믿거나 말거나지만. 요즘도 이런 신화를 믿는 사람이 있나?

 

인간이 감당하고 살아야 할 가뭄은 천재(天災)가 아니다.

 

어찌 감히 천재(天災)라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철저하게 인재(人災)이다.

 

 

 

 

 

 

 

 

, !”

와 또 난리고.”

찾았어요!”

뭐를. 뭐 잃어버렸었나.”

형 뭐 잃어버렸었어요? 말하지, 같이 찾아 줄 텐데.”

아니, 말고! 지훈이!”

뭐요?”

뭐라노, 야가.”

우리 여섯 번째요, 여섯 번째!”

니 또 인간 근처 갔다 왔나!”

, 모습은 안 드러냈어요! 그보다, 찾았다는데 안 궁금해요?!”

. 가보자.”

진짜 지훈이 맞아요? 닮은 사람 아니고?”

그 영혼을 못 알아볼 리가 없잖아!”

 

재해(才該), 여전히 인간 곁에 있었으며, 인간을 버리지 않았다. 여섯 번째조차도, 인간을 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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