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파도 (2)

어서 와 2024. 1. 14. 17:37

흐억!  하아, 하아.”

 

가만히 앉아 있던 피오가 갑자기 발작하듯 심장을 움켜쥐고 격한 숨을 내쉬자, 형들이 전부 피오를 쳐다봤다.

 

피오야? 왜 그래, 괜찮아?”

야가 갑자기 와이라노, 어데 아프나.”

흐읍, 흐으.”

 

형들의 걱정에도 그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헛구역질만 하는 피오와 병재가 눈을 똑바로 맞췄다.

 

괜찮아?”

 

왜일까. 분명 다른 형들이랑 똑같이 저를 걱정해 주는 중인데 원인을 모르는 형들과 달리 병재 형은 무언가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도 많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답답함에 가슴을 내리치고 있자.

 

하지 마.”

 

신동이 피오의 손을 잡아 가볍게 제지했다.

 

괜찮아? 많이 아파?”

, .”

, 차 돌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동현의 말에 종민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잠시 멈춰뒀던 차를 돌려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 퍼엉, 끼이익-.

 

.

 

뭐꼬, 갑자기 총이 어데서 날아오는 기고!”

, 뒷바퀴 터졌어, 더 못 가! 다들 조심, .”

! 괜찮아요?”

괜찮.”

다 나와!”

내려, 새끼들아!”

 

창을 관통하고 날아오는 총알에 종민의 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림과 동시에 요원들이 차를 쾅쾅 치며 큰소리쳤다.

 

역겨워. 별장은 그냥 죽이기 편한 장소일 뿐 우리가 그곳을 가서 죽인 게 아니야. 죽이기 위해 그곳으로 보낸 거지.

 

“SSA 요원이 우리를 왜 쏴!”

야들아, 괘않나!”

!”

 

동현이 빠르게 차에서 내려 반격을 시도했지만, 총 든 사람 여럿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또, 형들이 하나하나 쓰러져 갔다.

 

피오야, 피오야.”

 .”

너도 이 상황이 반복되는 거지?”

“! 형도요?”

, 내가 너보다 더 오래됐어. 일단 지금 상황이 좋진 않아, !”

 

타앙-!

 

!”

, 나오라니까 뭘 그렇게 뭉그적거려.”

괜찮아, 괜찮아, 피오야.”

 

형은 어떻게 이런 상황에도 웃을 수 있어요?

 

그 질문은 입 밖으로 내뱉지도, 전달되지도 못했다.

 

쓰러지는 병재를 손으로 받아 들자 금방 두 손이 피로 물들었다.

 

더는 웃지 않는 입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올려 차갑게 식은 눈으로 요원을 똑바로 바라봤다.

 

. 왜 우리를 죽이는 거야, 우리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더는 필요하지 않은 말을 처리하는 것에, 이유가 필요한가?”

.”

이용 가치는 충분하지만, 눈치 좋은 것들은 필요 없거든. 우린 그렇게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단순히눈치가 좋아서. 우리가 SSA의 명령을 의심하기 시작해서. 그것 때문에 우리는 죽는 거구나. 미리대에서 살아나오는 순간, 이렇게 죽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었구나.

 

억울해도 어쩌겠어. 그게 너희의 운명인데.”

 

원망스럽게도, 이딴 게 우리의 운명이구나.

 

비웃는 요원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사라졌다. 벌써, 혹은 겨우. 세 번째 죽음이었다.


.”

 

이제는 덤덤할 때도 된 것 같은데.

 

그저 차 타고 이동하는 중인데도 웃음이 끊이질 않는 형들을 보자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뭐꼬, 피오야 왜 우노.”

? 뭐야, 너 왜 울어.”

형들이.”

 

형들이 너무 불쌍해서요. 너무, 너무 안쓰러워서요. 그냥 갑자기 갇힌 대학교에서 살아 나오기 위해 발버둥 쳤어요, 근데 그 결과가 고작 이거예요. 인정받긴커녕, 그냥 쓰기 좋은 말로 이용만 당하다가 이용 가치가 떨어져서 죽는 게, 이딴 게 우리가 발버둥 친 결과예요.

 

많은 걸 바란 게 아니에요. SSA에게 인정받아 대가를 받고, 높은 자리에 올라 모두를 내려다보며 호화롭고 여유로운 삶을 살 생각 같은 거 없었어요. 만일 SSA가 위험한 조직이라고 해도 괜히 파헤치지 않고 그냥 모른 척 덮고 싶었어요. 그래야 우리가 안전하니까. 그래야.

 

그냥. 그냥, 살고 싶었어요.”

 

살 수 있으니까.

 

그냥 그렇게 안전하게, 목숨의 위협 없는 곳에서 살고만 싶었어요. 그래서 살아보려고, 살려보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이미 세 번이나 죽음을, 형들이 죽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경험한 피오는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이제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다. 죽음이 찾아오면 찾아오는 대로, 그냥 아무 노력도 안 하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 괜히 최선을 다했다가, 내가 최선을 다 해봤자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만 더욱 확실해질 거라면. 그냥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왜, 형들을 지키지 못했냐는 질문에… 변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무덤덤해져서, 내 죽음도 형들의 죽음도 그저 한순간의 꿈인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아무것도 안 하는 편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은 끝도 없이 이어졌고포기가, 하고 싶었다.

 

.”

 

따뜻하게 손을 잡아 오는 손길에 고개를 들자 병재와 눈이 마주쳤다.

 

자기와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자기보다 훨씬 많은 횟수의 좌절과 공포를 맛봤을 형.

 

하지만 그런 형의 눈에는 피로는 보일지언정, 포기는 보이지 않았다.

 

.”

괜찮아. 괜찮아, 피오야. 힘들어해도 돼. 그래도 죽으려 하지는 마.”

 

병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이들과 달리, 피오는 병재의 그 말에 더 크게 울었다.

 

형들이 가만히 기다려주는 동안 한참을 울었다.

 

포기는 아니었다. 형이 있는 이상, 포기는 할 수 없었다.

 

그저 앞으로 있을 더 많은 죽음을 버티기 위해, 주저앉지 않기 위해.

미리 많은 것을 쏟아내는 것일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더 많이 쏟아냈다.



꿈꿨다고?”

. 꿈이 너무 무서워서, 죄송해요. 놀랬죠?”

대체 뭔 꿈이었기에 그렇게까지 우노.”

. 생각하기 싫어요.”

그래, 생각하지 마.”

 

피오의 눈을 꾹꾹 눌러 닦아준 신동이 제대로 부은 눈에 웃었다.

 

막내는 막내네.”

놀리지 마요.”

알았어, 그럼 마저 갈까?”

차 출발한다?”

.”

 

피오가 걱정돼서 잠시 꺼놨던 시동을 다시 켜고 별장으로 향했다.

 

, 내리자.”

아따, 폐별장이라더니 디따 오래돼 보이네.”

그러게요. 근데 좀 싸하네요.”

, 진짜 무서운 것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형은 무서운 거 아니어도 쫄잖아요.”

아니거든! 쫀 게 아니라 반사신경!”

 

떠들면서 별장으로 들어가는 형들을 따라 별장으로 들어가려는데.

 

?”

 

병재가 피오를 붙잡았다.

 

피오가 뒤돌아보자 병재가 피오를 안고서 토닥여줬다.

 

.”

.”

, 형이 안은 게 아니라 안긴 것처럼 보이는 거 알죠.”

 

괜히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장난치는 피오에 병재가 웃으며 한 걸음 떨어졌다.

 

괜찮아?”

. 괜찮아야죠.”

피오야, 이건 내 생각인데. 나 다음은 네가 이 상황을 깨닫기 시작했어. 그렇다는 건 언젠가는 우리 여섯 명 모두 알게 되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요?”

 

총 든 이들을 이기기는 쉽지 않지 않을까. 오히려 괴로운 사람만 더 느는 게 아닐까.

 

호동이 형이 항상 하시는 말씀 있잖아. 우리는 떨어져 있을 땐 한 방울의 물이지만, 모이면 바다가 된다고.”

피오야, 병재야! 빨리 와!”

 

멀리서 저를 부르는 종민에 병재가 발을 움직였다. 그런 병재를 따라 피오도 다리에 힘을 주고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리고 어떤 바다든 바다에는 무조건.”

 파도가 치죠.”

 

이 발걸음이 파도가 되길 바라며.

'파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도 (6)  (3) 2024.02.28
파도 (5)  (0) 2024.02.23
파도 (4)  (1) 2024.02.09
파도 (3)  (0) 2024.02.03
파도 (1)  (1) 2024.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