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억!”
갑자기 돌아오는 의식에 브레이크를 한 번 밟은 종민이 룸미러를 통해 호동을 한 번 살피고 다시 태평하게 운전했다.
혹여라도 SSA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형, 괜찮아요?”
“와, 내 너무 놀랬다 금방. 뭔 꿈이 이리 생생하노, 와‥. 헝분해서 미안하다, 근데 방금 꿈이-.”
“형, 잠시만 조용히.”
설명하는 것은 나중이라 판단한 신동이 호동의 말을 끊고 동현을 불렀다.
“형.”
“엉?”
“이름 기억나요? 형이랑 닮았던 그 요원.”
“어‥. 그 왼쪽 눈에 흉터 있고 우리랑 같이 죽으려 했던?”
“네, 그 사람. 지금 이름이 기억이 안 나서요.”
“김 동이었을걸?”
“다른 건 기억 못 하면서 이건 기억하네.”
“야들아, 그 요원이 했던 말에 따르면 지금 SSA가 우리 죽일라 카는 거 아이가?”
“맞아요, 형 이미 방금 죽었잖아요.”
제대로 된 설명은 없이 당황만 주고서 생각에 잠긴 신동 탓에 호동의 눈만 커지자 피오가 웃으며 대략적으로 설명을 해줬다.
우리는 지금 끊임없는 죽음을 마주하는 중이라고, 이제 6명 다 갇혔으니 함께 방법을 생각해 내면 된다고.
“그러면 그 김 동 요원한테 도-.”
설명을 듣는 동안에도 시시각각 표정이 바뀌더니 설명을 다 듣고 나자 결국 울상을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이고, 그렇게 많이 죽었다고? 느그 괘않나?”
신동의 목소리를 자르며 호동의 걱정 가득한 목소리가 치고 들어오자 마찬가지로 생각에 잠겨있던 병재가 호동을 쳐다봤다.
“형은요?”
괜찮냐는 질문에 답이 아닌 질문이 돌아오자 호동이 당황한 듯 눈을 굴렸다.
“내? 내 뭐.”
“처음 죽은 거잖아요, 안 아파요?”
“아프기는, 간지럽다! 느그야말로 괘않나?”
평소에는 센 척, 허세라고 느껴졌을 말이 왜 이리 배려 가득한 말로 느껴지는 건지. 왜 이리 든든한 건지‥. 같은 걸 느낀 건지, 운전하고 있는 종민의 얼굴 또한 한결 편해 보였다.
아, 형이구나. 이제 진짜 완전체구나, 하는 생각에 피오가 작게 웃고는 대답했다.
“아이, 적응돼서 괜찮아요.”
“적응은, 피오 니 얼굴이 얘볐구마는.”
“몸 상태는 돌아와서 그냥 기분 탓일걸요.”
“아따, 니는 아가….”
호동이 신동을 흘겨보자 신동이 웃으며 호동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좋아서 그러죠, 이제 진짜 방법이 보일 것 같아서.”
“뭐 해 본 거 있나?”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요. 차 돌리기, 설득하기, 아무것도 안 하기, 차에서 안 내리기, 옹호하기.”
“김 동 요원한테 도움을 청할 수 있으면 그게 제일 좋기는 한데.”
“애초에 이제야 생각났을 정도로 그 사람은커녕 비슷한 사람도 보지 못했으니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죠.”
“진짜 방법이 하나도 없드나?”
“있었으면 이미 뭐라도 했죠.”
형들이 진지하게 방법을 찾는 동안 어차피 자기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아는 피오는 귀만 열어둔 채 창밖을 살폈다.
“…. 어‥?”
“왜, 피오야? 밖에 뭐 있어?”
피오가 작게 놀라는 소리에도 바로 반응한 병재가 묻자 피오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말했다.
“저희, 별장에서 멀어지지 않았어요?”
“응?”
“분명 처음에는 별장 근처였는데, 지금 한참을 이동했는데 아직 별장 근처도 못 갔잖아요.”
피오의 말에 잠시 생각해 보던 병재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나만 갇혀있을 때는 아예 별장에서 시작했었어. 루프 타이밍이 점점 밀리고 있는 건가?”
“그럼 여기서 한 번 돌아가 볼까? 여기까지는 안 깔렸을 수도 있잖아.”
“그건 안 돼요. 이미 꽤 이동해서, 방금이랑 위치가 비슷해져서 지금은 이미 깔렸을 거예요. 일단 지금은 그냥 가고 혹시 김 동 요원 없는지 잘 보는 거로 해요.”
병재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던 호동이 아, 소리와 함께 의문을 꺼냈다.
“근데 그 사람이라고 우리를 안 죽이나? 같은 SSA 요원이고, 우리를 죽일라 캤다이가.”
“그때 그 사람, 허리춤에 권총 두 개 있었어요. 아마 폭탄으로 죽일 수 없게 되면 총으로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겠죠. 근데 그냥 갔잖아요, 조용히.”
“죽일 마음이 없다고 봐도 되겠지.”
간단히 의견을 나누고 차에서 내린 이들이 SSA가 오길 기다리다가 동현과 닮은, 그러나 인상을 가르는 흉터를 가진 이를 찾으려 했지만, 그런 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허무하게, 다들 눈을 감았다.
“….”
“….”
허무함의 적막 속, 유일하게 종민만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완전히 도로변이네.”
“아.”
“그러네요.”
“뒤로 돌아가 볼까?”
“한 번 가 봐요.”
“에히이, 설마 도로변까지 깔렸겠어? 그건 너무 본격적이잖아.”
“그죠? 숲 안으로 꽤 들어가야 하는데, 숲 바깥에까지‥.”
다들 희망을 품었고, 차는 천천히 유턴하고 머리 방향을 바꿨다.
한동안, 숨 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조용한 주변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콰광, 끼익! 탕! 타당!
차는 다시 고장 난 듯 움직이다 멈춰 섰고 앞으로 튀어 나갈 뻔했지만 버틴 몸에는, 버틴 의미도 없이 곧바로 총알이 박혔다.
아, 시발….
평소, 욕은 전혀 하지 않는 병재였지만 그런 그도, 욕을 읊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마 될 수 있었다면 욕뿐만 아니라, 주먹이라도 날렸을.
“하….”
“….”
다들 조용히 한숨을 삼켰지만, 삼켜지지 않은, 유난히 크게 들린 누군가의 한숨 소리에 말을 얹는 사람은 없었다.
“어떡해요? 도로변으로 계속 달려요? 누군가는 신고해 줄 수도 있으니까?”
“아이다, 그건 너무 위험하다, 우리 때문에 슨량한 시민이 휘말리면 안 된다.”
“그럼 대체 어떡해요? 어차피 우리 다 죽으면 저 사람들도 다시 살아나요. 시도라도 해 보면 안 돼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 오래 축적된 피로에 예민해진 병재가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에헤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우리가 50번, 100번을 죽어도 슨량한 시민이 한 번 죽는 건 안 되는 일이다.”
“형은 지금 얼마 안 됐잖아요, 나는 지금 진짜로 100번은 죽은 기분인데 얼마나 더 참아야!”
“형.”
“….”
나만 힘든 것도 아닌데, 나만 갇힌 것도 아닌데, 나만이 아닌데….
이 상황이 형의 잘못도 아닌데, 형의 말이 옳은데. 형도 이곳에 갇히자마자 우리를 걱정했을 정도로 자기보다 우리를 더 생각하는 사람인데. 시민뿐 아니라 우리도 지키고 싶어 할 텐데. 그런 사람인데. 그걸 나도 아는데.
왜 그렇게 예민했을까, 왜 그 한 번을 참지 못했을까, 왜 소리쳤을까.
입술을 짓씹고 있는데, 피오가 다 안다는 듯이 웃으며 식혜의 뚜껑을 따 건넸다.
“괜찮아요?”
“…. 미안‥. 미안해요, 형.”
“아이다, 내도 니 정도 되면 안 그르겠나.”
룸미러로 병재를 흘끗 본 종민이 한 손으로는 계속 운전하면서 한 손은 쭉 뻗어 간식거리를 꺼낸 뒤 동현에게 넘겼다.
“동현아.”
“네?”
“이거 좀.”
“저 먹으라고요?”
“아니, 병재.”
“으응-.”
병재한테 주라고 했는데 바로 주지 않고 뭐 뭐 있는지 살피는 동현의 모습에 종민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야, 넌 먹지 마라! 너 때문에 아까 병재 삐졌잖아.”
“아이, 솔직히 그걸 누가 바로 믿어요호!”
“암튼 넌 먹지 마!”
형들의 장난에 기분이 좀 풀린 병재도 그들을 따라 작게 웃었다.
“저 괜찮아요. 동현이 형, 형 먹어요.”
“배고프다며, 먹어 둬.”
“그래요, 형. 아까처럼 배고픈 거보단 지금 조금 먹어두는 게 나아요.”
피오와 동이 형의 보챔에 결국 간식거리를 받아 입에 넣자 단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그래도 단 게 들어가니까 좀 낫제?”
호동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의자에 편하게 몸을 기댔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편한 자세로 말한다고 무거운 얘기가 편해지는 것도 아닌데, 다들 편하게 의자에 몸을 맡긴 채로 생각에 잠겼다.
“총 뺏어봤나.”
“형 매 생에 총 뺏으셨어요.”
“음….”
다들 고민만 하다 차는 별장에 거의 도착해가 서서히 속도를 줄일 때, 호동이 입을 열었다.
“종민아.”
“네?”
“멈추지 말고 계속 함 가 봐라.”
“계속이요?”
“그래, 내 생각에는 네비에 찍힌 길에 전부 깔렸을 것 같거든? 우리의 동선을 쟈들이 알 수 있으니께. 근데 그 후의 동선을 우예 알고, 우예 준비하고 있겠노. 안 그렇나.”
“오, 일리 있다.”
“근데 여기까지만 길이 나 있고 별장 근처부터는 길이 제대로 안 나 있어서 많이 흔들릴 수도 있어요. 다들 꽉 잡아요!”
천천히 줄이던 속도를 다시 올리자 울퉁불퉁 흔들리는 차체에 다들 손잡이와 서로를 꽉 잡고 차의 진동을 버텼다.
탕! 퉁!
총 몇 발이 차를 비켜 날아가긴 했지만, 갑자기 속도를 내며 별장의 벗어나 달릴 줄은 몰랐던 건지 본격적인 위협이 되지는 못했다.
“됐다!”
“근데 여기서 또 어떻게 해요?”
“여기서 더 달리기에는 나무가 정리가 안 돼 있어서 앞으로 못 가요!”
“어, 잠시만 밖에, 밖에!”
“밖에 뭐 있어?”
“백사회, 백사회 시체 총! 총, 총!”
피오의 다급한 외침에 종민이 차를 멈추자 문 옆에 앉아 있던 동현과 병재가 바로 떨어져 나가듯 내려 백사회로 추정되는 복장의 시체를 확인했다.
나머지도 따라 내리고 일단 급한 대로 시체가 들고 있는 총들을 챙긴 이들이 주변을 살폈다.
“근데 여기에 백사회 시체가 왜 있지?”
“게다가 시체가 다 그때 폐공장에서 봤던 깡패 같은 모습인데 이 사람만 백 정장으로 쫙 빼입었는데?”
“일단 다들 총 들어요. 보니까 방탄복 입고 있는 사람들도 있네. 6명 다 입지는 못할 것 같고, 몇 명만 입어요.”
“그럼 일단 피오 니 입어라.”
“저요?”
“그럼 막내가 입지, 누가 입노.”
호동이 시체 하나에서 방탄복을 빼내 건네는 걸 받던 피오가 급하게 병재 쪽으로 달려갔다.
“형!”
“응?”
“위에!”
탕!
“미친, 잠!”
탕!
“잡았어!”
피오가 위에! 라고만 말했는데도 건물 옥상, 순간적으로 빛이 반짝, 들어온 곳을 발견하고 총을 쏜 동현이 한 방에 숨어있던 스나이퍼를 잡았다.
“피오야! 너 괜찮아?”
하지만 이미 피오는 총을 맞은 뒤였고, 하필 급소를 맞춘 총알 탓에 숨을 색색 내쉬었다.
“야, 너!”
“아이, 화내지 마요오….”
“니는! 어차피 다 같이 죽는데!”
“어차피 다 같이 죽으니까 내가 먼저 죽어도 상관없는 거잖아요…. 스나이퍼, 더 있을 수도 있어요…. 조, 심….”
지금까지는 죽을 때 시간 차이가 있어봤자 1분 정도. 이렇게 타이밍이 완전히 엇갈려 죽은 적은 없는데 어떡해야 하냐, 우리 모두 차라리 지금 자결하고 다시 시작해야 하냐, 하는 걱정 가득한 목소리들을 들으며 피오의 의식이 완전히 끊겼다.
“…. 뭐지? 병재‥ 형?”
“뭐, 시발. 징그럽게 왜 형이라 부르고 지랄이야.”
“…. 동이 형?”
“와, 네가 나 그렇게 부드럽게 부르는 거 처음이야! 왜?”
“‥. 에?”
“응?”
“어?”
“아, 시발 진짜 좀 닥쳐! 안 그래도 시발 계속 처 뒤지고 있는데 차에서만이라도 편하게 있자!”
끼이이익!
“뭐야, 시발. 운전 좀 곱게 해!”
“네가 너무 시끄러워서 집중이 안 되는데.”
“하…. 느그 뭐 하냐? 곱게 곱게 가자-.”
……. 뭐야, 이거. 엄마, 나 무서워요. 이럴 줄 알았으면 죽지 말걸. 형들, 나 좀 구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