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웬 파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직 상황을 모르는 종민의 순수한 웃음에 피오도 언제 포기를 꿈꿨냐는 듯 절로 웃음이 나왔다.
“형, 다 끝나면 저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엉? 그래. 배고파?”
“…. 그냥, 형들이랑 먹고 싶어서요.”
“으엉? 갑자기 웬 애교야.”
웃음에는 힘이 있다는 말이 사실인지 그저 웃는 종민에, 그 웃음을 보며 견딜 수 있었다.
죽음을 겪는 것은, 형들의 죽음을 계속 봐야 하는 것은 너무 힘들었지만, 종민은 항상 그 자리에서 웃고 있으니까.
언제까지 겪어야 할지 모를 수많은 죽음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이대로, 형들은 웃음을 간직하도록 사실을 알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시간은 가혹하게도,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어! 무슨 소리야?”
“어?”
“뭔 소리가 들린다고 그러노.”
“안 들려요?”
“아, 하지 마! 무섭게 왜 그래!”
별소리 아닌가…. 내가 지금 너무 예민한 건가. 아, 진짜 분위기 너무 싸해.
“어! 방금 또! 못 들었어요?”
“아, 진짜아‥ 무섭게 왜 그래애!”
“나도 무서워요. 여기 너무 싸해. 빨리하고 나가요.”
오늘 왜 이러지… 계속 누가 쳐다보는 것 같아. … 미처 가리지 못한 핏자국과 총 자국‥.
“귀신인가‥.”
“뭐?! 귀신???”
신동이 작게 중얼거린 말에 동현이 펄쩍 뛰어올랐다.
“무섭구로 왜 자꾸 그래애!”
“아니, 아니. 저도 그런 거 안 믿어요. 근데 자꾸 시선이 느껴지니까 그냥‥ 아니에요,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나 봐요.”
“너무 놀라서 그런 거 아니야?”
“네?”
“저거 때문에.”
종민이 가리킨 바닥에는 SSA에 대한 정보들이 적힌 종이들이 놓여있었다.
“그런가.”
종민의 손가락을 따라 종이들을 다시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생명을 딱히 소중히 여기는 느낌은 아니야. 언제든지 죽이고, 언제든지 좀비로 만들고. 필요하다면 권력을 이용해 무고한 시민들을 위협할 수 있는 자들이지. 그런 그들이 이런 숲 깊숙한 곳에 박힌 곳에 우리를 보냈다‥. 본인들의 안 좋은 정보가 있다는 것쯤이야 알았을 텐데 우리를? 왜? 손해보다 많은 이익이 있다면 몰라, 어떤 이익이 있지? 물론 SSA가 의뢰한 임무를 마무리하지 못한다면 많은 이들이 죽겠지. 하지만, 그건.
이 임무의 내용이 사실일 때의 얘기고.
무엇보다, 저 자료들만 봐서는 그들이 죽든 말든 신경 쓸 것 같지는 않은데.
“….”
“형?”
“이거 오늘 받은 임무 미끼 같-.”
“믿을 수 있는 정보일까요?”
“뭐?”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끼어들며 크게 외치는 피오에 신동이 피오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러자 피오가 쩔쩔매며 말했다.
“그렇잖아요, SSA가 우리를 이곳에 보내면서 이런 정보가 있다는 걸 몰랐겠어요? SSA가 한 짓이 아니라 백사회가 조작한 정보일 수도 있잖아요.”
“…. 우리 백사회가 빼돌렸다는 기밀 찾으러 온 거지?”
“네, 누가 찾을 경우를 대비해 조작한 정보를 숨겨둔 거일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제대로 된 기밀이 안 보이잖아. SSA가 우리를 유인한 거라면? 이번 임무는 그저 미끼일 뿐이고.”
“설마‥ 그런 거겠나.”
피오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으며 조용해졌다.
그 분위기를 전환해 보겠다는 듯 병재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SSA는 착, 한 단체잖아요. 그냥 평범한 단체가 아니라 세계끼리 연결된 기군데. 그들은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거잖아요.”
“‥. 맞아요.”
하지만 그런 밝은 목소리와는 다르게 표정은 묘하게 어두웠다.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형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해. 한국에만 있는 기구도 아니고 세계 기군데 설마 저게 다 진실이겠어?”
확실히 그 말이 일리가 있어 신동도 더 주장을 내세우진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동아? 왜 그래?”
신동이 말하다 말고 몸을 흠칫 떨더니 조용해지자, 동현이 신동을 불렀다.
“쉿, 지금 무슨 소리 안 들려요?”
“무슨 소리?”
“아까는 무슨 소린지 확실하지가 않아서 그냥 넘겼는데 지금 밖에서 발소리 들려요.”
신동의 말에 마찬가지로 귀를 기울이던 동현이 펄쩍 뛰어올랐다.
“어, 많아! 많다! 많이 온다! 온다! 여기로!”
“‥. 하….”
갑자기 들리는 많은 양의 발소리에 다들 우왕좌왕하는 사이 문이 벌컥 열렸다.
문이 열리고 가장 먼저 보인 건 검은색의 긴 쇠막대였다.
그 쇠막대라는 게 총구라는 걸 인지하는 사이 두 번째로 보인 건.
“피오야!”
중력에 따라 아래로 떨어지는 새빨간 피였다.
“지훈아!”
피오의.
피오에게 병재가 달려갔고, 후드득. 뜨거운 핏방울이 얼굴 여기저기에 튀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깨닫기도 전에 가슴 쪽에 저릿한 통증이 퍼졌고 곧이어 팔과 다리에도 충격이 전해졌다.
몸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당황한 탓에 고장 난 귀는 형들의 목소리 대신 심한 이명을 담고 있었다.
그렇게, 아파할 새도 없이 눈이 감겼다. 완전히.
“헉!”
“뭐야, 왜 그래, 뒤쪽에 무슨 일 있어요?”
뭐야…. 여기는 차 안인데?
격한 숨을 내뱉으면 고개를 돌리자 호동이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동아? 와 그라노.”
“꿈….”
꿈이야? 그게? 그렇게 생생했는데?
하지만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데, 멈췄던 심장이 격하게 뛰고 있고 모아뒀던 숨을 한 번에 다 토해내듯 숨을 쉬고 있는데.
꿈이 아닐 수가 없지 않은가.
잠시 숨을 헐떡이던 신동이 겨우 진정하고 옅게 웃었다.
“꿈인가 봐요, 죄송해요.”
그래, 꿈이야. 꿈. 지독한 악몽.
“대체 뭔 꿈을 꿨길래 그렇게 식은땀을 흘려. 줄까?”
“고마워요.”
동현이 건넨 티슈로 땀을 닦고 의자에 몸을 폭 기대앉았다.
꿈…. 꿈은 현실과 다르다고들 하니까‥ 괜찮겠지.
“?”
그렇게 되뇌며 진정하고 있는데 갑자기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옆을 돌아보자 피오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피오야?”
“괜찮아요?”
“….”
정말 꿈이라면 그 내용은 나만 알아야 하는데….
“뭐 알아?”
왜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을까.
“아는구나.”
곁눈질로 옆을 둘러보자 형들은 자기네들끼리 떠들고 있었고, 병재와 피오만 자기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제야 뭔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SSA에 관해 무어라 말하려 했을 때 가로막았던 거‥. 진심으로 SSA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기보단 내가 SSA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하는 걸 막으려는 듯 보였어. 요원들이 쳐들어왔을 때는 이상할 정도로 태연했지…. 이미 포기한 듯 한숨만 내쉬고 반항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 가장 먼저 죽어버리던 태도.
꿈인 줄 알았지만, 무언가 알고 있는 게 분명한 눈까지.
“꿈, 아니구나.”
“눈치 진짜 좋네요, 형.”
“‥.”
꿈이 아니구나. 진짜… 죽었었구나. 근데 모종의 이유로, 지금 이 순간으로 다시 돌아온 거구나.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기회라는 것은. 모를 수가 없었다.
“너희 괜찮아?”
“괜찮아요, 익숙해졌어요.”
익숙… 해질 수가 있는 문제인가? 이게?
옅게 웃으며 말하는 둘에 신동이 인상을 썼다.
아까는 제대로 느껴지지도 않았던 고통이 이제야 찾아오는 듯 온몸이 아릿아릿 아팠다.
이런데, 이게, 익숙해진다고?
“먼저 죽는 게 좋아요.”
“어?”
“고통은 받아들이게 되고 점점 무뎌지는데.”
형들을 슬쩍 쳐다본 병재가 쓰게 웃었다.
“형들이 죽는 걸 보는 건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래서 너희가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갔구나. 안 무서운 게 아니라, 무서울 수가 없는 거였구나. 무섭다는 이유로 멈춰있을 수가 없었구나. 고통이 무섭다고 멈춰있으면 익숙해질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올 테니까. 그냥 괜찮다 믿으며 계속 움직였구나.
“뭔 얘기하고 있노.”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먹고 싶은 거 얘기하고 있었어요.”
“먹고 싶은 거?”
“네, 저 지금 배고파요. 형들은 먹고 싶은 거 없어요?”
“동현이 형은 또 도넛 먹고 싶은 거 아니에요?”
“아, 맛있겠다.”
“너는 무슨 파이터가 밀가루를 그렇게 좋아하냐.”
“가끔 먹으니까 괜찮아요!”
형들과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대화하는 둘에 신동도 숨을 한 번 크게 내쉬고 대화에 꼈다.
해 보자. 애들이 저렇게 고통을 감내하며 자연스럽게 웃어 보이는데, 내가 망칠 순 없으니까… 해 보자.
하지만 중간중간 밝은 동생들을 보며 울컥하기도 하고 숨이 막혀올 때도 있었다. 자기보다 한참이나 어린 동생들이, 바다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 허덕이는 꼴을 보기가 힘들어 오기도 했다. 익숙해졌다 싶다가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살이 꿰뚫리는 고통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냥, 그 고통을 마지막으로 죽고 싶었다.
그래도 믿었다. 곧 형들도 사실을 알게 되고 함께 해결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애석하게도.
병재가 루프를 시작한 지 5번 만에 피오가 깨닫고, 피오가 시작한 지 6번 만에 신동이 깨달은 것과 달리, 신동이 루프를 시작한 지 10번이 넘도록 그 누구도 루프를 시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그들의 고통을, 공포를. 알아주지 않았다.
잔인한 현실 속에 셋은 아무리 서로 으쌰으쌰 하며 버텨보려 해도 지쳐갔으며, 잃어갔다.
처음에는 눈물을, 그다음은, 용기를. 또 다음은 위로를. 다음은 응원을. 다음은 의욕을. 다음은 살고 싶다는 마음을. 그리고 끝내, 눈물까지도.
그저 그렇게, 죽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