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재야, 이것 좀 설명해도.”
“….”
계속 죽음을 경험하고 죽음을 보고‥ 아무리 웃으며 버텨보자 다짐했어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점점 지쳐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아무리 하나하나가 짧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거의 20번의 반복은 짧은 시간도 길게 만들기 충분했다.
“병재야?”
배는 눈치 없이 밥을 달라며 꼬르륵거렸고 눈꺼풀은 얼마나 무거운지 계속 감겨왔다.
“아, 네. 주세요.”
호동이 건넨 종이를 건네받은 병재가 평소와 달리 바로 설명해 주지 않자 다들 의아하게 병재를 쳐다봤다.
“… 병재 어젯밤 샜나?”
“피곤해 보인다 했더니 많이 피곤한가 보네.”
그 시선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병재에, 다들 서로를 흘끔흘끔 보다가 동현이 병재를 안아 들었다.
“1층 침대에 눕히고 올게요.”
“1층까지? 떨어져 있으면 위험하지 않긋나.”
“2층은 침대가 너무 낡아서 1층이 나을 거예요. 수시로 확인하러 가면 되죠.”
어차피 같이 있어도 위험할 거라는 걸 아는 신동이 동현을 거들었다.
“같이 갈까요?”
신동이 일어나자 동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혼자 갔다 올게. 병재 이렇게까지 피곤해하는 거 처음 봐서 빨리 눕히는 게 나을 것 같아.”
“알았어요, 갔다 와요.”
동현한테 웃어주던 신동도 대화상대가 사라지자 얼굴을 굳힌 채 눈을 문질렀다.
뻑뻑해‥. 나도 좀 자고 싶다.
마음 같아선 병재 옆에 누워 같이 자고 싶지만 자기까지 잠들면 형들이 걱정할 게 분명하기에. 어차피 이번 삶도 허무하게 끝나고 형들은 기억 못 할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도저히 자러 갈 수가 없었다.
“동아, 어데 아프나.”
“아니에요, 그냥 조금 피곤하네요.”
“니도? 피오도 피곤해 보이던데 단체로 와이카노. 아픈 건 아이고?”
“아이, 안 아파요, 형.”
“괜찮아요.”
피오가 평소처럼 애교부리며 웃자 굳어있던 형들의 분위기도 서서히 풀렸다.
하지만 그런 피오도, 형들이 전부 자기를 쳐다보지 않을 때는 지친 표정으로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 그러니까, 사실 나쁜 단체였는데 SSA가 그 시체를, 받고, 어, 막, 죽이고? 그랬대요.”
“….”
“그걸 왜 형이 읽고 있어요. 정리 좀 잘해 봐요.”
어느새 병재를 옮기고 온 동현이 단서를 정리하고 있는 종민의 모습에 웃었다.
“아잇, 잘한 거야아.”
“그게요?”
“네가 해보던가!”
종민에게 종이를 넘겨받은 동현이 가만히 읽다가 당당하게 외쳤다.
“그러니까, 나쁜 거예요!”
“뭐가?”
“이, 뭐더라. 아, SSA가!”
동현의 설명에 종민이 특유의 허허실실한 웃음을 지었다.
“야, 내가 한 거나 네가 한 거나!”
“아이, 제가 형보다 낫죠-.”
“똑같거든!”
“푸핫, 아니, 형들. 둘 다 똑같아요.”
이 시간이 너무 좋았다. SSA를 앞에 두고 있지도 않고 그냥 평소 같은 형들의 엉뚱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책상에 대충 걸터앉아있던 피오가 웃음을 터트리자 그제야 동현과 종민도 민망했는지 멋쩍게 웃었다.
“어쨌든 다들 이해했죠?”
“응, SSA를 믿으면 안 된다는 거잖아?”
“제대로 속았다, 그쟈잉.”
“그러게요.”
후로도 이게 단서 찾기인지 노는 건지 모를 시간이 이어졌다.
병재가 없으니까 아무것도 모르겠-, 뭐야.
순간 느껴지는 한기에 솜털이 쭈뼛 서자 종민이 숙이고 있던 허리를 들며 팔을 문질렀다.
뭔가 오늘 되게… 감이 안 좋네.
“형?”
근거 하나 없는 그저 촉, 그 촉이 말하고 있었다. 이 별장을 벗어나라고.
“추워요, 형?”
“아니….”
팔을 문지르며 한기를 쫓아낸 종민이 문을 바라봤다.
“나 병재 좀 보고 올게. 형, 저 병재 좀 보고 올게요.”
“방금 동혀이가 갔다 오지 않았나?”
“뭔가 신경 쓰여서요. 금방 갔다 올게요.”
“알긋다.”
계속 재촉하는 호동에 동현이 수시로 확인을 한 걸 아는데도 불길한 감에 종민이 직접 확인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갔다.
아까는 몰랐는데…. 여기 좀 스산하네.
깨진 창문들은 덜컹거렸고 그 창문 너머로 들리는 바람 소리는 스산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묘하게 이질적인 공간에 종민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병재가 자고 있을 왼쪽 방문을 열었다.
“병재야!”
그러자 보인 방안의 모습은 평소 큰 소리 내지 않는 종민조차 놀라서 크게 소리치기 충분한 모습이었다.
“병재야, 너 괜찮아? 병재야!”
자다 갑자기 당한 것인지 심장 부근에 총알이 박혀 피가 흥건한데도 크게 반항한 흔적은 없었다.
“병재야!”
피를 멈춰보고자 상처를 꾹 누른 탓에 손과 소매가 붉게 물들어 가는데도 병재는 눈을 뜰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병재-!”
철컥.
다시 한번 병재를 크게 부르는데 뒷머리에 차가운 금속이 닿았다.
“….”
“귀찮게, 좀 모여있을 것이지.”
누군지 모를 사람의 혀 차는 소리를 들으며 종민이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감을 무시하지 말걸, 빠르게 별장을 벗어날걸. 이라는 작은 후회를 할 틈도 없었다.
“어!!”
끼이이익.
급하게 멈추는 차에 다들 몸이 앞으로 튕겼다 돌아왔다.
“뭐꼬!”
“형, 뭐예요!”
호동과 동현이 놀라 운전 중에 존 거냐고 종민을 타박하는 사이 병재는 입술을 짓씹으며 안도를 삼켰다.
드디어….
한때는 이 고통을 형들은 모르길 바랐는데, 나만 고통받길 빌던 때가 있었는데.
고통을 너무 가볍게 본 죄인 것인지, 정말 형들이 현실을 모르는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이제는 형들 배려고 뭐고 그냥 빨리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드디어 한 명이 더 늘었다. 이제 단 두 명, 두 명만 더 안다면. 뭐든 해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병재가 숨을 깊게 내쉬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아잇, 안 잤는데…. 다들 괜찮아요? 어디 안 박았죠?”
“니만 정신 차리면 된다.”
“제가 운전할까요, 형?”
“아이, 괜찮아.”
“아니, 제가 불안해서 그래요.”
“아, 진짜 안 잤어!”
자기가 운전하면서 잘 만큼 운전을 대충 하지도 않고, 지금 피곤하지도 않은데 잤을 리는 없다는 생각에.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종민의 머리에는 살아 돌아온 건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일단, 마저 갈게요.”
“니 진짜 계속 운전할 수 있나?”
“아, 진짜 안 잤어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에도 종민이 웃으며 마저 차를 몰아 별장까지 도착했다.
아까 봤던 곳이랑 너무 똑같은데….
종민이 의문을 가진 채 별장을 보고 있자 설명 담당인 병재가 다가가 종민을 불렀다.
“형.”
“엉?”
“괜찮아요?”
“뭐가?”
“총 맞지 않았어요? 아플 텐데.”
“…. 진짜야?”
종민의 물음에 병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를 죽인 사람들, 누구야?”
“SSA 요원이에요.”
“…. 뭐?”
병재가 상황 설명을 끝내자-이해를 못 해서 거의 세 번을 설명했지만- 종민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곤 동생 셋을 보며 옅게 웃었다.
“힘들었겠다, 야. 어떻게 버텼대.”
다음 회귀자가 종민인 걸 알고 이제는 그나마 힘을 주던 종민의 순수한 웃음을 못 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예의 그 웃음을 짓고 있는 종민에 피오가 조심스레 물었다.
“형은….”
“응?”
“형은, 어떻게 이런 상황에도 웃을 수 있어요?”
“그럼?”
“네?”
“웃지 않고 울면, 지금 이 상황이 해결되나?”
“….”
하지만 웃는다고 이 상황이 해결되지도 않아요.
입 밖으로 내뱉지도 않은 그 말을 종민이 용케도 알아들은 것인지 피오의 등을 툭툭 치며 말했다.
“웃어도 바뀌지 않고, 울어도 바뀌지 않는다면. 차라리 웃는 게 나아. 울면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뭐, 나는 아직 처음이라서 쉽게 얘기하는 거일 수도 있지만, 일단은 웃으면서 버텨보자고.”
피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종민이 더 짙게 웃었다.
“너희가 고생이 많다, 야.”
“느그 와 넷이서 계속 속닥거리노.”
“아니에요, 그보다 형! 여기 뭐 있을 것 같아!”
“니가 드가 봐.”
“왜 저예요!”
“네가 말 꺼냈잖아, 네가 가야지.”
“형이 한 번만….”
웃으며 호동 곁으로 다가가 정말 처음인 것처럼 단서를 찾는 종민에 피오도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 맞다. 형이었지. 이렇게 의지가 되는 건 또 처음이네.
병재와 신동도 같은 생각인지 웃으며 다시 주어진 삶을 살아갔다.
확실히 의지할 수 있는 한 명의 형이 생기니까 마음이 조금 편하기도 했다. 방금도 했던 말을 처음 하듯 자연스럽게 내뱉는 종민에 웃음도 나왔다.
“형, 여기 뭐 있을 것 같아요!”
“먼저 드가 봐라.”
“싫어요.”
“와?”
“뭐가 확! 나올 것 같잖아요. 야, 동현아. 네가 들어가 봐.”
“아, 싫어요호!”
몇 번의 죽음을 경험하고, 몇 번의 삶을 살아도 처음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종민의 모습에 힘을 얻는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차마 말하지 못했다.
“하….”
“웬 한숨이에요?”
“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동현아, 저거 열어 봐.”
“아, 싫다니까요!”
가끔 무거운 한숨을 삼키는 형을 보고‥. 형도 힘들 텐데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인지, 말하지 않는 것인지 모를 그 말을, 내뱉지 못했다.
형이 힘든 티를 내면 형이 루프를 깨닫기 전으로, 아니‥. 그보다 더 무너져,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서. 한 명의 웃음에 의지하고 있는 이 상황에 그런 말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자기가 형이라고 힘든 기색 하나 내보이지 않고 속으로만 삼키고 있다는 걸 아는데도. 이기적이게도. 참‥. 못나게도.
죄송해요, 전 이 정도밖에 안 되나 봐요….
“피오야?”
“…. 형.”
“괜찮아, 아무 생각 하지 마.”
“… 네.”
전하지 못한 사과에도 다 안다는 듯 그저 웃어주는 종민에 피오도 옅게 웃었다.
그저 그렇게, 웃으며, 웃음을 보며 버텼다.
시간을 보낸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시간을 ‘버텼다.’